스피치의 달인으로 통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골칫거리인 의료보험 개혁 문제의 돌파구를 본인의 스피치로 찾았다. 얼마 전 상. 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지? 그 이후 건강보험 개혁안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CNN과 오피니언리서치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의 연설을 시청한 미국 사람 가운데 3분의 2가 개혁안에 찬성 입장을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연설 이전보다 14%포인트가 급등한 67%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스피치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연설을 통해 건보개혁의 당위성을 명확하게 전달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 비율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는 응답이 72%로 '그렇지 못했다'는 응답 26%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이번 조사가 오바마의 연설을 시청한 미국 사람 427명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고, 또 연설을 시청한 사람 가운데 민주당 지지자가 훨씬 많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사람 전체의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의료보험 개혁건과 관련해 이번 연설이 오바마의 입지를 키운 것만은 사실이다.

오바마 스피치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혹시 연설문 작성자가 탁월해서일까. 살펴보니, 뜻밖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은 31살 청년이 담당하고 있다. 이 사람의 조력의 비중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연설의 최종 출고는 오바마의 입에서 나온다. 연설문 작성 과정을 보자. 주요 연설 일정이 잡히면 대통령은 고문, 국가안보보좌관, 비서실장을 불러 30분가량 토론을 벌인다. 그래서 메시지를 정한다. 그런 다음 연설문 작성자에게 구술해준다. 작성자는 거기에 맞춰 글을 쓴다. 하지만 이건 오바마에게 참고 자료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 교정해서 연설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오바마의 연설은 오바마의 것이라 하겠다.

사실 강조점을 둔다던지, 제스처를 취한다던지 하는 부분은 연설자의 몫, 아니겠나. 그렇다면 이제 그 노하우를 살펴볼 차례이다. 연설 첫 머리에 청중들을 향해 호기심을 유발하게 하는 말을 던진다. 그리고 청중들 마음속에 숨은 자긍심과 고귀함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볼까? 어렵고 난해한 복잡한 이슈들을 다룰 때, 간결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해 마치 음악을 듣고 있는 듯 리듬감을 타고, 주요 주장 내용에 대해서는 반복하는 테크닉을 활용해 사람들의 머리에 확실하게 그 메시지를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리듬감이라, 참 어려운 말이다. 전문 강사인 김미경 씨가 정리한 내용이 흥미롭다. 긴 한 문장보다 짧은 2~3개 문장으로 간결하게 전달해야 한다. 장문, 복문을 단문 서너 개로 쪼개라는 것이다. 또 단조로운 목소리는 청중을 잠재우기 때문에 목소리에도 노래 부를 때처럼 강약과 속도를 줘서 피아니시모(여리게),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 포르테(세게),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와 같이 리듬을 타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짧은 멈춤이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도 한다. 클라이맥스가 고조되는 순간 갑자기 멈춤을 반복할 때 청중은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스피치의 마지막 방점은 바로 제스처에 있다. 제스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청중과 눈을 맞추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청중과 호흡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오바마가 택하는 단어는 매우 긍정적인 것들이다. "YES, WE CAN", "CHANGE", "DREAM OF AMERICA" 이것이다. 이것이 강연의 감동을 고조시키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무리 스피치의 기술이 탁월해도 진정성이 없으면 안 먹힌다는 지적도 있다. 말 잘하는 정치인이야 숱하게 많지 않나? 하지만 울림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먹힐 수 있었던 점은 몇 가지가 있다. 아직 그의 임기가 초반이다. 의료보험에 있어서 오바마가 지향하는 가치가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한다는 점이다. ‘이 사람 교언영색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눌한 논변보다도 더 불신을 살 수 있다. 탁월한 스피치라는 평가에는 신뢰도가 담보돼 있는 것인지 이런 물음이 전제돼 있다. 오바마의 스피치가 신뢰를 담보한 달변으로 계속 굳혀질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