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아가씨 선발대회’가 최근 구조조정 되는 분위기다. 그제 개막된 충북 음성군의 대표적인 농특산물 축제인 14회 청결고추축제에서 고추를 비롯한 농특산물 홍보 담당자로 기존의 '고추아가씨'와 '고추요정'을 버리고 '고추아줌마'를 뽑았다.

아무래도 홍보대사하면 유명인 아니면, 젊고 예쁜 여성을 선호해왔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1996년부터 실시하던 고추아가씨 선발대회는 지원자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미혼여성과 대학생들이어서 외모 위주 선발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고추에 대한 상식이 없어 청결고추 홍보 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03년부터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고추요정 선발대회'로 바꿨으나 역시 홍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군과 음성로터리클럽은 올해부터 대회를 '음성고추아줌마 선발대회'로 바꾸고 참가 자격을 기혼여성으로 정했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던 미인대회, 종류도 참 다양했다. 많기도 엄청나게 많다. 약간 길어도 한번 죽 늘어놔보자. 부천 복사꽃 아가씨, 고양 꽃아가씨, 시흥 포도아가씨가 있었다. 강원도는 홍천 무궁화아가씨, 철원 쌀아가씨가 있다. 경상북도로 가보자. 경주 버섯아가씨, 안동 한우아가씨, 영천 포도아가씨, 성주 수박참외아가씨, 충청도는 청원 약수아가씨, 보은 대추아가씨, 단양, 이곳은 세 개나 된다. 철쭉여왕, 평강공주, 마늘아가씨. 전라도는 담양 딸기아가씨, 곡성 효녀심청, 구례 지리산녀, 보성 차아가씨, 무안 양파아가씨, 영광 굴비아가씨, 신안 머드아가씨가 있었다. 전북 장수군에는 논개 아가씨가 있고, 순창은 고추장아가씨가 있다. 그 지역 특산물에 아가씨를 붙인 격이다.

선발기준은 기막히다. 특산물에 대한 이해도?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한 아가씨 선발대회의 응모기준이다. 심사기준 총점 100점. 얼굴전체 20, 목과 가슴 20, 하체 20. 측정시 고려사항. 배는 나오지 않았는가, 히프의 선모양이 처지지 않았는가, 다리의 선이 곧아야하며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특산물에 이해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전문지식 유무 항목은 100점 중에 20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여성 상품화 논란, 외모 지상주의 논란이 커졌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홍보와 지역특산품 홍보를 위해 아가씨 선발대회를 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성계에서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차별해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분위기이다. 실제 이 논리가 가능한 것은 젊은 여성들 중에 이른바 ‘스펙’을 쌓으려고 여기 선발대회, 저기 선발대회 기웃거리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던 것이 최근 들어 퇴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의 상품화'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의 반발 때문도 있겠지만, 일단 떨어지는 효용가치 때문에 곳곳에서 대회를 폐지하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지원자도 크게 줄고 있다. 어떤 미인대회의 경우 몇 년 전 `지역 내 1년 이상 거주자' 기준을 무시한 채 2명의 외지인을 출전시키고도 13명에 지나지 않는 등 참가자가 해마다 줄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아가씨 선발대회를 없애고 아줌마 선발대회를 열고 있다. `늘씬한' 아가씨 대신 `친근감'있는 20~50대 농촌 아줌마를 선발하는 것이다. 고추아줌마 선발대회도 이런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이미 충북 충주에서는 사과아가씨대신 사과아줌마를 선발하고 있다. 또 경남 창원에서는 수박아줌마를, 부산 자갈치 관광문화축제에선 자갈치 아지매를, 경남 마산에선 전어 아지매를 선발하기도 했다.

별난 아저씨 선발대회도 있다. 경기도 포천 이동 갈비축제에서는 몸무게가 가벼운 '미스터 갈비'와 배 둘레가 가장 큰 '미스터 뚱'을 선발했다고 한다. 여름엔 전북 완주에서 열리는 비봉 수박축제에선 수박아저씨를 선발한다. 전북 고창에선 주꾸미 아저씨를 선발하고, 전남 여수에선 코믹 낙지아저씨를 선발하는데, 자격 조건은 머리숱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외양보다는 내실을 따지는 문화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주 독특한 아가씨 선발대회 얘기 하나 전하며 물러가겠다. 캄보디아에서 열린 '2009 지뢰 아가씨 선발 대회'이다. 지뢰를 홍보하는 대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뢰의 피해로 다리나 팔이 절단된 아가씨들이 출전하는 대회이다. 완전히 발상의 전환을 이룬 셈이지? 올해 대회는 최연소 18세부터 최고령 48세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20명의 여성들이 출전했다. 사이트 메인화면에는 '모든 사람은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글이 등록돼 있으며, 대회의 1등상은 맞춤 의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뢰 피해자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면서도,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도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 대회 역시 장애우의 존엄을 해친다며 중단하라는 목소리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