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예장 고신측에서는 이번 총회에서 ‘원로목사 제도’를 폐지하려는 강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얼마나 원로목사들이 교회 안에서 지나친 간섭을 했으면 이런 폐지 공감대가 형성되었겠는가? 이제 한국교회의 역사가 깊어갈 수록 많은 원로 목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원로목사들이 바른 처신을 함으로 존경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필자는 원로목사의 입장에서 과거 ‘월간목회’에 게재했던 글을 정리하여 보았다.

원로목사의 위상, 바로 정립할 때

지금 한국교회는 또 하나의 새로운 풍속도(風俗圖)를 그려주고 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바로 그것이다. 6.25 사변 때 대거 월남한 성도들에 의해 한국교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고향을 빼앗기고 교회를 빼앗긴 그들이 사력을 다해 교회를 위해 희생한 터전 위에 교회는 30배，60배，100배로 결실케 되었다. 그 교회는 그들의 삶，바로 그것이며 생명 전부라고 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지라도 헌법에 의해 70세를 정년으로 해서 은퇴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80년대 부터였다

자기 생명이나 다름없는 교회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과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軋轢)이 삐걱 소리를 내게 된 것은 어느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과학의 발달로 한국인의 수명이 길어지고 70세 정년을 넘어선 나이지만 아직도 높은 산을 청년회원들과 오를 정도로 펄펄한 건강을 가진 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생명과 다름없는 교회를 떠나 강제로 고려장을 지내듯 어느 아파트에 처박아 두는 것은 견딜 수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러다가 자연히 교회에 관심을 나타내게 되면 담임목사 쪽에서는 간섭으로 여겨져 과잉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 처음에 일어나는 마찰이다. 그것이 점점 누적되다 보면 마침내 큰 덩어리로 화하여 교회를 위기로 몰아넣고는 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장로교 각 교단의 으뜸이 되는 영락교회(통합측)，충현교회(합동측)，경동교회(기장측)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크고 작은 수많은 교회들이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갈등으로 그가 선임한 후임자들이 사임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아니된다. 이러한 일이 더 확대되기 전에 이제는 한국교회가 원로목사의 위상을 바로 정립할 때가 온 것이다. 원로목사를 어떻게 예우해야 되며，원로목사는 자기가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와 후임자되는 담임목사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교회에 덕이 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갈등의 원인 중의 하나가 한국사회는 공의보다는 인정에 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도 사실 큰 실세를 이루는 것은 지연(地緣)，학연(學綠)，혈연(血緣)이다. 고향이 같다든가，같은 학교 출신, 같은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로목사가 20년，30년을 장기목회하는 동안 각 가정의 온갖 애환과 함께 하기 마련이다. 결혼주례，돌，유아세례，자녀합격，가족의 사고와 입원，부모님의 장례 등 온갖 슬픔과 기쁨에 동참하는 동안 깊은 정이 들게 마련이다. 장기목회를 하는 동안 어느 가정이든지 반드시 대소의 애경사(哀慶事)를 도와주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런 입장이 되면 때로 원로목사가 구태의연한 설교를 하든지，목회행정이 짜임새가 없어 무질서하든지，좀체 교회가 성장이 되지 못한 채 여러 해가 흐를지라도 감히 정면으로 따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 목회자에게서 수세(水洗)를 하고 결혼 주례를 받은 처지요，더욱 그 목사의 안수하에 중직이 되었다면 때로는 못마땅한 일이 있더라도 감히 고개를 들고 직언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다가 은퇴하는 날이면 아마 상당히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던 우유부단하던 전임자와는 달리 적극적이고 단호하며，설교도 화려하고도 명쾌하며 오늘의 상황에 맞아 떨어지도록 외칠 때，그리고 교회는 날로 성장하여 조직이 방대하여 갈 때，얼마나 신나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깐，담임목사가 급성장을 위해 연달아 무슨 사순절 40일 새벽기도회，전도폭발，총동원주일 몇 천 명 돌파 등으로 교인들을 몰아세운다. 당회장실은 으리으리하게 꾸미고，주보 앞에 박사라는 것을 명기하고 무슨 의식 때면 화려한 박사가운 입기를 즐겨하며，승용차가 교인들의 수준에 비해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까이 가면 웬지 차가운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그때부터 도시의 차가움에 지친 사람이 고향의 포근한 맛，산야의 포근함을 그리워하듯 우유부단한 것 같고 구태의연한 설교를 하는 것 같아도 한없이 포용해주는 원로목사의 품이 새삼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서 다시금 지도력의 누수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빛이 강하면 그늘이 진하게 생기듯이 강한 지도자 밑에서 반대측도 있게 마련이다. 그중 어느 분이 원로목사를 찾아가 담임목사의 문제를 앞뒤는 생략하고 알맹이에 말을 보태서 쇼킹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너무 과시적인 데만 열을 올리므로 생기는 불화，독단적인 태도，호화사치판의 재정운영, 그리고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열한다.

이 때 만약 원로목사가 그 미끼에 넘어가 ‘그래서야 되는가?’라는 한 마디를 했다면 이 사람은 교회에 돌아가 ‘원로목사님이 담임목사에 대해 대단히 노여워 하더라’고 과장해서 퍼트릴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담임목사에게 전달될 것이고 담임목사는 ‘아니，목회를 맡겼으면 전적으로 일임해야지，왜 노인이 일일이 간섭인가?’라면서 대단히 화가 날 것이다. 이 말도 원로목사에게 자연적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초창기 부임 당시에는 자주 찾아오던 담임목사가 자리가 잡혔다 싶은지 노골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에 소외감을 느끼던 차라 이런 말을 들을 때 노여움이 폭발하기 일쑤이다. ‘이름도 없는 자를 불러다 저만큼 키웠더니，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가. 그새 호랑이를 키웠구나’ 이런 식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사탄은 더 기승을 부리고 결국 교회는 깊은 골이 파일 것이다. 그 싸움에서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던 원로목사가 힘이 있어 보이던 담임목사를 압도하게 되는 것은 바로 저 성자적인 면모와 인정이라는 무기 때문임을 발견하게 된다.

원로목사를 섬기는 담임의 모습은 아름답다

우리 담임목사들은 원로목사들의 교회에 대한 애착을 간섭으로 여기는 과잉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다. 그러므로 노부모에게 자주 손자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것이 큰 기쁨을 드리는 것처럼 교인들이 자주 왕래하고 또 자주 교회행사에 초빙하여 모시는 것이 큰 유익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가 아닌 것이다. 다윗이 기름 부은 종이라는 이유로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것은 결국 후에 자기에게 모든 덕이 돌아오고，어떠한 자의 반란도 막게 하는 방패가 되었다.

또한 원로목사 분들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미 목회권을 맡긴 이상 다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목회자마다 다 스타일이 다르다. 목회방침이 100이면 100사람 다 다르다.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라도 자기와 같을 수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될수록 간섭은 피해야 덕이된다. 간섭을 하다보면 목회를 소신껏 할 수도 없고 당회나 교회 앞에서 그의 지도력은 약화될 것이요，하나님의 일이 그만큼 손해를 볼 것이다.

또한 어느 누구나 100 사람에게 만족을 다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때로 불만을 가지고 일부러 온 자이든지，결혼주례를 했기에 인사차 왔든지，심한 경우에 당회원 몇 명이 목회자의 결정적인 실수를 가지고 와서 집단불만을 표하러 왔든지 간에 담임목사 편에 서서 변호하고 순종하도록 권유하는 일에 힘써 주십사 말씀 드리고 싶다. 그것이 곧 교회의 유익이요，이 소식을 전해들은 담임목사도 큰 감동과 선한 결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원로목사를 오래 모시고 싶지 않은 담임이 누가 있겠는가?

또한 한 가지 부언하고 싶은 것은 설교 문제이다. 대부분의 원로목사들이 은퇴한 후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한 달에 한 번이든，아니면 더 자주 설교하는 경우가 있다 장기목회 하던 입장에서 단번에 담임목사 체제로 변화되는 것은 교회성장에 혹 문제가 생길까 우려해서 하게 되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오래 끌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본다.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는 설교가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한 주간 지내는 동안에 그 주간에 반드시 해야 될 말씀이 있음을 발견한다. 격려이든 위로이든 책망이든 간에 회의를 하든지，누구와 상담을 하든지，심방을 하는 도중에 마음에 불붙는 말씀이 있다.

그것을 전하지 못한 채 원로목사가 설교를 해버린다면 교회에는 손해가 될 것이다. 또한 주일 아침 설교가 은혜가 넘치면 한 주간 동안 교회의 모든 운영이나 각 가정이 윤활유를 칠한 것처럼 순조로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속된 말로 설교를 죽을 쑤고 나면 이상하게 여기저기서 시혐의 기운이 싹트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담임자는 깊은 기도 속에서 양떼들을 살피며 필요한 자양분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은퇴한 분이 그 시간을 차지해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미숙해 보여도 과감히 맡겨주십시오 

숙련된 원로목사의 입장에서 지금은 너무 미숙해 보여도 과감히 맡기고 될수록 교회를 멀리하는 연습을 할 때，담임자가 성숙한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임택진 목사는 “저는 교회를 그만두면서 분명히 공언하기를 ‘나는 이 교회 헌금의 의무는 하겠으나 출석의 의무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좀체 안 갑니다. 작년에도 두 번 갔습니다. 잘 안 가는 이유는 담임목사님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인도 될수록 안 만나려고 합니다. 주례를 해 준 교인들이 진심으로 ‘왜 아니 오느냐’고 아쉬워하는 말을 하지만，목사는 들리지 않는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 말 속에 모든 해답이 들었다고 본다. 바울도 분파의 기운이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권고하기를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나는 심었고 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4)”고 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교회를 향한 간섭을 줄이면 줄일수록 담임목사와 교회는 더욱 성숙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홍익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