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행복지수’라는 열쇳말이 뜨고 있다. 그 이유는 순전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때문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최근 국가의 경제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하고 있는 ‘국내총생산 즉 GDP’는 눈속임이라며 행복지수를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성장 지표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GDP는 가장 많이 쓰는 경제성장의 지표인데, 뭐가 문제여서 다른 걸로 쓰자는 걸까. GDP는 한 국가의 경제 활동을 살펴보는 지표로 폭넓게 활용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활동의 양을 단순히 계산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 악화와 같은 경제적 외부 효과나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이야기해 경제성장률이긴 하지만, 이게 인간의 행복과 무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우리는 통상 GDP가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고, 따라서 행복감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소개할 사례 역시 GDP를 늘릴 수 있는 첩경일 텐데, 이것에 대해서도 과연 애청자 여러분의 고정관념,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다.

예는 또 있다. 온 국민의 가슴을 태운 숭례문 화재나 서해안 기름유출도 GDP의 숫자를 늘린다. 숭례문 화재 또 서해안 기름유출로 인한 복구로 인해 GDP가 증가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부실시공으로 백화점이 무너져도 여기에 건물을 다시 지으면 GDP가 늘어난다. 전쟁도 GDP가 늘어난다. 소득분배 나 의료서비스나 사회복지 수준은 반영되지 않는다. 미국 같은 경우는 세계에서 의료 부문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나라인데 실제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 통계적으로는 의료 산업이 발달돼 있는데 국민들은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GDP로는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표인 국민의 행복감을 측정하기 어렵다, 이 말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풍요와 행복이 반비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소득수준과 개인의 행복감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다.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이 보장되면, 그로부터 돈을 더 벌어도 행복도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는 1971년부터 1991년까지 20년 동안 국민소득이 83% 증가했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민소득 만 달러 선이 상한이란다. 이 만 달러를 넘어선 순간, 더 이상의 풍요는 행복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GDP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지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행복, 웰빙의 지표를 포함시킨 새로운 경제지표 권고안을 제출했다. 새로운 경제지표를 만들겠다는 점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선 때 내놓은 공약이기도 했다. 작업기간은 18개월이었단다. 기존의 GDP 계산법에 삶의 질과 지속가능 발전 부문을 추가한 것이다. 삶의 질에는 휴가일수와 평균 기대수명, 가계소득과 구매력, 의료보험 서비스, 복지 시스템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또 지속가능 발전 부문에는 환경보호 수준이 주요 지표로 들어갔다.

GDP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GDP와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발생했다. GDP로 매긴 나라 순위는 1위 미국, 2위 일본, 3위 중국, 4위 독일, 5위 프랑스였다. 우리나라는 15위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경제지표 권고안으로 순위를 매기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새로운 권고안은 사실 아직 이론만 나와 있고 구체적인 데이터는 산출되지 않은 상태이다. 비슷한 자료로 영국 신경제 재단이 만든 국민행복지수가 있는데 이걸 대입해보면, 1위 코스타리카, 2위 도미니카, 3위 과테말라, 4위 콜롬비아, 5위 쿠바였다. 우리나라는 68위이다.

물론 사르코지의 이런 의도, 다분히 정치적인 속셈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GDP 순위로는 프랑스가 5등이다. 프랑스의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 부분이다. 사실 휴가 일수나 기대 수명에 있어 프랑스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변수는 GDP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탄소세를 도입하는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신차 가격을 할인하는 ‘할인-할증제’ 같은 적극적인 친환경정책에서도 미국 보다 앞서지만 GDP가 이거에 대해 ‘하든 말든’ 이러고 있다. 순위를 좀 올리려는 의도 아니냐 이런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국민의 행복과 무관한 GDP는 갈수록 공신력을 얻기 힘든 척도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식의 행복지수가 포함된 경제성장 지표.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사람의 주관적인 행복을 어떻게 수치로 표시하고 우열을 매길지 의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전문가들은 GDP를 대체할만한 지표는 없다는 입장. 물론 사르코지나 스티글리츠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면서도. 정책을 결정할 때는 GDP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향후 구체적인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GDP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 스티글리츠는 권고안 서문에서 “경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점차 참된 삶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따라서 경제 발전 정도는 GDP 중심에서 웰빙과 행복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권고안을 채택해 G20 회의에서 이를 주요 의제로 제안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