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유언 안 쓰는 사회’라는 제목의 기획기사가 실렸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치가 폭등한 가운데,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세대의 자산 대물림 시기가 다가오면서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2002년 69건에서 지난해 295건으로 무려 328%나 늘어났다.

사례 하나를 소개하던데. 인용하겠다. 경기도에 사는 신 모 씨 형제 이야기이다. 3년 전 홀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낸다. 아버지가 남긴 10억 원짜리 아파트 때문에 다툼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차남에게 "형이 지금까지 나를 계속 부양해 왔으니 네 몫은 2억5000만원"이란 구두(口頭)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동생은 형에게 법대로 하자며 '5대5 상속'을 요구했다. 아버지의 구두 유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걸 알아채곤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동생이 고집을 피운 것이다. 의좋던 형제는 소송 직전까지 가는 숱한 언쟁 끝에 결국 아파트를 팔아 절반씩 나눠 가졌다.

우리투자증권 압구정지점의 60세 이상 고객은 약 50명. 그런데 이 중 유언장을 작성해둔 자산가는 5%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이게 전체 통계를 반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금융자산은 약 4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60대 이상 계층이 적잖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본인의 사후(死後) 설계는 미흡한 상태다.

가진 게 많은 분들의 죽음은 분란을 낳기 마련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말년은 음울했다. 파킨슨병이 그의 몸을 옥죄었고 배우 출신인 마지막 부인 장칭(江靑)과의 불화가 그의 마음을 피폐케 했다. 그런데 마오쩌둥이 병상에서 눈을 감자마자 장칭은 사람들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당신은 부당한 대접을 받아 왔어. 당신은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요.” 남편이 써 준 유언이란 주장이었다. 따라서 자기에게 당 주석 자리를 넘기라고 호통 쳤다. 하지만 장칭은 감옥에 갔다. 조작한 것이 들통 난 것이다.

'팝의 전설'이면서도 전처가 많았던 프랭크 시내트라는 유언장에다 '넷째 부인에게 유산을 넘겨준다. 누구라도 내 유언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자동으로 상속권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죽기 한 달 전에 작성한 유언장에서 칼과 은식기 등 가재도구 하나하나까지 상속자를 지정하고 가난한 이웃에게도 온정을 아끼지 않았다. 사이가 나빴던 8살 연상의 아내에게는 침대와 가구 몇 점만을 물려줬고, 건달이라고 미워한 둘째 사위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처럼 완벽하게 재산유언을 한 사람 중엔 알프레드 노벨이 꼽힌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노벨상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아내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자필 유언장 중 아들과 딸에 대한 유언이다. 그는 아들과 부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아내의 노후를 부탁한 재라 씨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000평을 남겼다. 자신의 모든 주식은 사회에 환원했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에게는 주식과 땅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유일한 평전’에 실린 내용이다.

그렇다면 논란의 여지를 두지 않는, 확실한 유언장은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핵심은 구술은 절대 안 되고, 자필로 쓰되 공증까지 거치면 된다. 사실 유언장은 오래전부터 서양에서 일반화 됐다. 생전에 변호사의 입회아래 문서나 녹음으로 유언을 남긴다. 유언장을 공개하는 방식과 입회인까지도 지정하며 유언장의 밀봉이 훼손돼 있으면 무효일 정도로 엄격하다. 미국에서는 9.11테러 참사 이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유언장작성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언장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으로는 대비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생전에 계신 분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결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 죽음을 전제로 돈이나 재산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 따라서 재산이 있는 어르신 분들, 오래 살고 싶은 마음과는 별도로, 유산 문제에 대한 깔끔한 입장 표명을 생전에 해두시는 게 좋겠다. 자제분들이 요구할 수는 없잖은가. 이것은 본인에게도 좋고, 후손들의 화목을 위해서도 좋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의 재산이 자손에게 갈등과 증오의 씨앗이 될 것 같으면 깔끔하게 사회 환원을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안내 전화 일러드리겠다. 아름다운재단 서울전화 766의 100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