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서울노회보 22호)

깔뱅의 하나님 이해: 심연을 넘어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깔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의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심연에 주목한다. 깔뱅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불멸하고 영원하시지만 인간은 풀같이 시들며 아침 이슬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죄를 차마 보시지 못하지만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평생 먹고 마시는 존재이다. 이 죄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리는 구름과 같이 우리를 천국에서 분리시킨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기에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순간，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즉시 소멸 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심대한 차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커다란 심연을 만들어 놓았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았다. 여기에서 심각한 신학적 질문이 시작된다.

하늘의 영화로운 천사들조차 영광의 하나님 앞에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곧장 응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흙집에 살고 있는 죄 많고 흠 많은 비루한 인간이 그 거룩하고 영화로운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깔뱅의 하나님은 인간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곳에서 자족하시며 한가롭게 소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깔뱅의 하나님은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늘 가까이 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알리시며 그 사랑을 인간 개개인에게 부어주시고 인간과 가까이하시고 친근히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 에 사로잡힌 비참한 인간을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하늘로 올리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넘치는 사랑을 가슴에 안고서 인간의 자리까지 다가오셨다.

인간의 수준에 맞추시는 눈높이 하나님

깔뱅의 하나님은 그 놀라운 사랑을 안고 인간에게 다가오시기 위해서 스스로를 인간의 수준에 맞추시는 눈높이 하나님이시다.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행위를 적응(accommodation)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맘마’ “까까’ 하듯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리를 굽히고 인간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인간의 미천한 이해력에 눈높이를 맞추신다.

하나님의 지식은 너무나 높고 고상해서 땅의 흙집에 살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수박만한 인간의 머리로 어찌 알 수 있을까? 기독교강요에서 깔뱅은 우리를 “육체에 매여서 언제나 땅에 기어 다니며，영적인 것은 그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의 이해력으로 얻기에는 너무 높다.

그러기 에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시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사건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모세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만 보아도，하나님 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려면 온 하늘을 불 태워도 부족하지만 그러면 인간이 너무 놀랄 것이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가시떨기에 붙은 불로 축소시킨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죄성과 야만성에 자신을 맞추신다. 인간은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한 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함을 고려한 눈높이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천사들조차 지키기 어려운 높은 법을 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걸맞은 법을 요구했다면 사람들은 그 아득함에 정신을 잃고 깊은 절망 가운데 빠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법은 인간의 타락하고 완악한 본성을 고려한 법이다.

예를 들어 모세가 19:18에서 이혼 증서를 주고 이혼을 허락한 법에 대해 깔뱅은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완고함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정의의 엄격함을 누그려 뜨렸다”고 해설한다. 성경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완전한 법과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법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벌어지는 곳이 바로 노예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법이다.

노예법 가운데서도 특히 출애굽 기 21:1-6에서 동료 노예와 곁혼하여 자식까지 둔 노예가 안식년을 맞아 풀려날 때에 자유를 얻으려면 아내를 놔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 노예가 아내와 자녀를 놔두고 떠난다는 것은 극히 야만적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다.깔뱅은 이것을 그 당시 사람들의 치유하기 어려운 완악함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법을 엄격하고 높은 차원으로 강행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사랑으로 관대하게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어리석고 죄 많은 인간의 눈높이에 적응하기 위하여 낮아지셨다. 예수님은 높고 영화로운 하늘 영광 떠나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우리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고 너무나 영화로우셔서 인간의 높이로 허리를 굽히고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종종 성경에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난다.

원래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시고 인간의 모습도 아니지만 이러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시는 것도 자신을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는 적응의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의 눈높이에 자신을 적응하기 위해서 자신의 영광을 다 보여 주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어느 정도 가리며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제 영광의 모습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하나님이 인간과 씨름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야곱이 보았다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낸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수준에 낮추신 눈높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에게 나타나신 눈높이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

하나님이 인간의 눈높이로 맞추어 나타나시는 모습은 다양하다. 우선 하나님은 자연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자연을 깔뱅은 ‘책’이나 ‘거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깔뱅은 “하나님은 하늘과 땅 세상 모든 곳에 그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와 영원함을 쓰시고 조각하셨다”고 말한다.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의 극장’이며 우리를 그의 관람객이다.

우리는 자연이라는 극장에서 하나님의 영광，그의 선하심, 지혜 능력을 바라보면 감탄한다. 우주 그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불꽃을 볼 수 없는 곳은 없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성경은 자연보다 하늘의 비밀을 더욱 생생하고 더욱 분명 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의 차원을 넘어 인간을 향하선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 계획을 분명히 보여준다.

적응의 클라이막스는 성육신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 성육신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적응이며 “무한하신 아버지는 우리가 그의 영광에 압도되지 않도록 우리의 작은 척도에 적응하기 위하여 아들 안에서 유한해 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이며 인간의 타락하고 피조된 능력에 맞추어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유일한 자기 계시이다. 성육신은 십자가의 정점을 향한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모습으로 적응하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다. 험하고 단순한 십자가 안에 놀라운 하늘의 빛나는 보화가 숨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또한 성만찬으로 우리에게 적응하신다. 만일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둥소리를 낸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잘 견딜 수 있도록 성만찬을 통하여 하늘의 비밀과 아버지의 보살핌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의 희생인 십자가를 생생하게 드러내신다.

한국교회에 주는 깔뱅의 메시지

하나님이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적응하시는 모습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이 스며있다. 이러한 깔뱅의 “참 좋으신 우리의 눈높이 하나님”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가?

첫째，한국교회가 시대의 눈높이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요구한다. 깔뱅의 하나님은 그 시대와 문화에 적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깔뱅은 각 시대 각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적응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깔뱅은 하나님이 마치 가정교사가 아이들의 연령에 맞추어서 각기 다른 스타일로 교육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다른 시대에 다OJ한 형태로 적응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변하신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가장이 자기 아이들을 유아 때와 청년 때와 어른이 될 때 각기 다른 방식을 가르치고 다스리고 인도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변덕쟁이로 부르거나 그가 자기 목적을 포기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기독교강요 2.11.13)."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전통과 현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교회가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와 전통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새로운 시대에 따른 유연한 변화에 지나치게 폐쇄적일 때 교회는 그 생명력을 잃기가 쉽다. 영국교회를 보라!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수천의 성도들이 붐볐던 교회들이 지금은 활기를 앓고 머리 허연 노인들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극장이나 커피숍으로 바뀐 교회들을 보게 되면 깊은 서글픔과 경각심마저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교회들이 너무도 오래된 전통만을 강조하고 변화에 민감한 젊은이들을 붙잡지 못한 이유도 간과할 수 없다.

곡조도 없는 시편을 19세기 가락에 맞추어 찬양한다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숨도 쉬기 어려운 엄숙한 분위기에서 전통예전만 강조한 나머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많은 푸른 새싹들을 놓친 것이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은 교회 내에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찬송가와 복음송 피아노와 드럼 주입식 성경공부와 쌍방 간의 대화와 나눔을 중시하는 GBS(Group Bible Study)，전통예배와 현대예배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교회정책과 새로운 창의적인 정책개발 등 전통과 변화의 보이지 않는 접전지가 많다.

교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지만, 깔뱅의 대답은 간단하다. 복음의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그 복음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담는 포장지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전통과 현대가 다양한 스타일로 혼재되어 있는 다양성의 시대이다. 전통을 유지하되 현대의 새로운 흐름에도 한층 열려 있는 마음이 중요하리라 본다.

둘째，교회가 사랑을 위하여 섬김의 자리로 낮아질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사랑을 위하여 낮아지셨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와 영광을 떠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직접 우리 눈에 보이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나타난 곳은 낮고 험한 십자가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집사，권사，장로，목사라는 직이 낮은 곳에 서 겸손히 섬기는 직이라기보다는 뭇 성도들 앞에 은근히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명예를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교회마다 선거 때마다 여러 잡음이 들리고 누가 선거에 떨어져서 크게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커지더니 목사가 달라졌다느니，장로 되기 전에는 그렇게 겸손히 잘 섬기더니 장로 되고 나니 사람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기에 밥퍼 목사님，주차장 봉사하는 장로님，주방에서 설거지 하시는 권사님... 이들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가?

셋째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나라 장로직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장로교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의 장로직제를 보면 장로 사역 중에는 교인들을 심방하기도 하고 교인 가정에 가서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이 있다. 이러한 사역은 스코틀랜드 장로직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야고보서 5장 14절에서도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말하며 장로들이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역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이러 한 아름다운 섬김의 전통이 살아난다면 스코틀랜드에서 싹이 돋아 한국에서 만개한 장로 직제가 더욱 아름답고 성숙한 전통으로 자리 잡으리라 본다.

맺으면서

요즈음 예장통합 교단에서 예장300만성도 운동이 한창이며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좋은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입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을 외치는 것도 좋지만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손과 발이 낮은 곳에 내려가 그들의 처지에서 그 들을 이해하고 아픈 이들의 상처를 만져주고 외로움에 떠는 자들을 안아주고，고아와 과부와 불쌍한 이들을 보듬어 줄 때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지고 더욱 풍성한 사랑의 열매가 맺히리라고 본다.
보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높은 곳에서 사랑을 말하기보다 낮은 데로 내려가 친히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참다운 전도가 아닐까? 사랑을 위하여 친히 허리를 굽혀 우리의 수준에 자신을 맞추시는 우리의 참 좋으신 눈높이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갈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문안교회 부목사, 장신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