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박 국 2: 1- 4
로 마 서 1:16-17


오늘은 교회 개혁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논제를 게시판에 붙이므로 본격적인 교회 개혁의 불길이 불기 시작하였던 일을 기념하여 우리가 매년 10월에 교회 개혁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마틴 루터가 교회 개혁의 원리로 삼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오직 믿음으로"라는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주제를 우리의 상황에서 검토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길은 믿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악화된 관계를 회복하여 올바른 관계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인간이 어떤 자기의 노력으로 회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회복하여 놓으신 그 관계를 믿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릴 때에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갈 때에 비로소 바른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오직 믿음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구원의 모든 역사는 하느님 편에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우지 아니하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을 내가 살려하지 아니하고 전폭적으로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의지해 오던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나 체면 따위는 결단코 내 세우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완전히 없던 것으로 돌려버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 태어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결코 간단한 말이 아니요 그 의미가 깊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좀더 자세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난한 마음에 깃드는 믿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조금 다르게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은 살리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사람이 있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 의인 노릇 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비유에 보면 이런 대조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한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느님 앞에 큰 소리로 하느님의 율법을 잘 지켰으며 정한대로 금식하고 십일조를 헌금하였노라고 자신 만만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성전에 가까이 나아갈 용기도 없이 멀리 떨어져 눈을 감고 가슴을 치면서 "하느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눅 18:9-14)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자기의 삶을 율법에 근거한 것을 좋았지만 스스로가 자기를 높인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의인으로 규정하고 스스로 만족해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어떤 도우심도 필요가 없습니다. 제 멋대로 자기를 하느님 앞에서 의인으로 내 세웠습니다. 이런 자세로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달랐습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무기력함과 죄가 많음을 하느님 앞에 고백하므로 하느님의 용서와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자세입니다. 세리는 이 때문에 오히려 하느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느님의 인정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보증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결국 하느님이 인정하시는 의란 우리에게 있는 어떤 의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우리에게 주신 의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만 '아무 것도 없으니 주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리와 같이 자기의 죄를 깨닫는 데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정말로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는 그런 삶입니다. 믿음이란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고 풍성하신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가장 가난한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율법을 지키므로 갖는 어떤 자부심이라든지, 아니면 어떤 지식이나 돈이나 지위 같은 것들을 가질 때 믿음을 갖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었던 것은 저들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리할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 가진 선민 의식(選民意識)이 저들에게 걸림돌이 되어서 저들은 가난해질 수가 없었고, 그래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왔던 부자 청년도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그 안에 믿음이 들어갈 여백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은 그래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마음만이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가난한 자만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정말로 믿음을 가졌는가? 우리는 정말로 가난한 마음을 가졌는가? 자기의 무기력함과 죄인임을 깨닫고 어쩔 도리가 없어 하느님 앞에 가슴을 치며 도우심과 용서를 간구하는 자인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나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고 자기가 가진 하잘 것 없는 우월감에 만족하고 살아가지는 않는지? 내가 가진 재물이나 지식이나 어떤 사회적인 지위로 자신의 삶의 근거로 삼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완전히 쏟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가난한 자로, 완전히 벌거벗은 자로 서기까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고아와 같이 자신을 느낄 때까지 내가 의지하고 있는 이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하게 떠나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막 10:29-3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여 가난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나의 삶의 완전한 개혁을 의미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비우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평등한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다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은 믿음의 눈으로만 모든 사물을 보고 특별히 다른 사람들을 믿음의 눈으로 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기 이전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의 피부색이나 그의 생김새나 그의 지식이나 그의 가문이나 그의 가진 재산이나 지위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를 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 유대인은 자기들이 하느님의 선민(選民)이요 그래서 할례(割禮)를 받았고, 율법도 가졌노라고 자랑하였습니다. 헬라인은 그들의 문화와 지식을 자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 그의 목표인데, 이런 민족 간의 차별이나 나라 사이에 있는 우열(優劣)의 관계가 이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주자, 남자나 여자 사이에 있었던 어떤 우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를 받아 가질 때 모든 인간은 완전히 평등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런 새로운 인간 관계를 받아드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은 모든 인간 관계를 오직 믿음의 관계에서만 본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같이 믿는 나의 형제가 피부색이 검든지 희든지,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박사이거나 무식하거나, 장관이거나 말단 공무원이거나 상관하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새롭게 된 나의 형제요 자매로 대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신 참으로 귀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계층 간의 갈등이나 지역 간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또한 평등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우열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죄인이라는 한 가지 사실로만 나타날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하느님을 만날 때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벗어 던질 수 있고, 하잘 것 없는 이 땅의 계급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사람으로 판단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나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의 삶은 곧 사랑의 삶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를 높이고 자랑하는 대신 스스로를 낮추며 겸손하게 행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여 질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게 됩니다.

불의와 타협을 거부한 삶

끝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악한 시대에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오직 진리로만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박국서에 보면, 불의가 횡행하고 악한 자가 잘 되며,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세력을 얻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착취와 억압이 자행되던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자, 정직하게 살려는 자들이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예언자는 하느님께 항의를 하였습니다. 어째서 하느님은 이런 자들을 그대로 두시는 것입니까? 어째서 하느님은 잠잠하십니까? 이런 예언자의 질문에 하느님께서 주신 대답이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였습니다. 결국 악이 발악을 하고 온갖 불의와 부정이 있다할지라도 결코 네가 가진 의와 정직을 버리지 말고 또 하느님께서 반드시 불의를 심판하시고 의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고 인내로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악한 시대에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인내와 소망으로 하느님의 의를 기다림을 뜻합니다. 그것은 곧 이 땅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불의와 진리로 맞서며, 그에 대항하여 진리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이 바로 여기에 근거하였습니다. 그는 교황청에 맞서 믿음으로 싸워 나갔습니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그를 엄습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들어주시려는 것입니까? 나의 하느님, 당신은 죽으셨습니까? 아니! 당신은 죽으실 리는 없고, 단지 숨어 계실 분이겠지요... 아아! 하느님,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나를 도와 주십시오. 나의 방패요 나의 보호하심이 되시어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에서 나의 높은 처소가 되어 주소서."

그는 오직 믿음으로 종교 개혁을 추진해 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도 이 불의하고 악한 사회 속에서 타협을 거부하고 진리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온갖 거짓을 폭로하고 저들의 불의와 맞서 싸우며, 여기에 의의 역사를 성취시켜 나가는 생활을 뜻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거대한 세력이 그 막강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할 때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통치의 실현을 기다림을 뜻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반드시 이 땅에 하느님의 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를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 가는 삶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길도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오늘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길도 오직 믿음으로만 성취될 것이며,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증오와 갈등을 극복해 가는 길도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믿음을 갖기 위하여 진정으로 가난한 자, 겸손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만을 자랑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 개혁 주일을 맞이하면서 루터가 내 세웠던 "오직 믿음으로"의 원리는 아직도 이 세계와 우리 사회와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데 있어 유효한 것임을 인식하면서 오직 믿음으로만 행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동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