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그리스도인은 참된 교회를 추구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교회의 표지(標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이어오는 동안에는 표지 문제를 거론할 필 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이단과 사설이 생기게 되자 교회 }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되자 참 교회를 식별하기 위한 어 떤 표지의 필요를 절감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교회의 표지의 진정성은 교회의 오랜 역사나 방대한 규모가 보장 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전파와 성례전의 진정한 시행과 권정의 확립에서 찾는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1장 9항에서 “어디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히 전파되고 청취되며 성례가 l네스도의 규정대로 거행되는 것을 보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약속이 반드시 이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전파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로서 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즉 성례전의 거행과 권징의 시행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전파 없이는 의지를 갖지 못하는 것임을 요한복음 8:31, 32, 47과 14:23, 그리고 요한일서 4:1-3에서 알 수 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히 전파되고 E 청취되지 읺는 곳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다.

교회라는 기치 아래 기복종교와 무속신앙과 신비주의가 강조되기도 하고 설교라는 미명으로 자유주의 신학과 스콜라 철학과 율법주의 신앙이 위세를 떨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사람만 모이면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또 청취되고 있는가를 물으며 교회는 이 일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는 곳에서는 또한 성례가 속화(俗化)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의 불순한 전파로 인하여 복음의 중심적 진리가 부정되는 곳에서는 자연히 성례의 적정(適正)한 거행 역시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만일 성례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거나 성례전 자체에 어떤 요술적인 효능을 귀속시킬 때 그러한 곳에 교회가 임재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로마 천주교회의 성례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말씀의 전파 없이 성례만을 위주하거나 말씀을 전파할 경우ㅇ에도 성례를 말슴보다 우선시키는 것은 성례의 적정한 거행으로 인정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개신교회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다. 로마교회가 말씀보다 성례를 중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개신교회는 성례보다 말씀에만 위주함으로써 전자는 말씀의 전파 없는 성례전 위주의 교회가 되었고, 후자는 성례전 없는 설교 위주의 교회가 된 셈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대다수의 개신교회가 1년에 춘추로 두 차례 성례를 거행하고 있는 줄 알지만 연중 겨우 두 차례의 성례를 적정한 거행으로 볼 수 있겠는지는 의문이다.

매주는 곤란할지 모르지만 성찬식은 현행 회수보다 더 자주 거행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신앙고백이며，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임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교회의 표지로서 말씀의 순정한 전파와 성례의 적정한 거행을 지적했으나 권징은 여기에 삽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원의 교리가 교회의 생명임과 같이 권징은 교회의 힘줄이라"고 말하여 교회에 있어서 권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신자의 생활은 사회 안에서의 매일의 정상 의무를 이행하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신경(信經)뿐만 아니라 도덕생활의 표준이 요구되며，그러기에 권징이 필요한 때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권징을 신실히 이행하는 일은 물론 용이한 일이 아니다. 동편 교회에서 치리 받은 자를 서편 교회에서 무조건 영입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중직에 임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동편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곤경을 치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치리해야 할 사건이 발생해도 거의가 눈감아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혹자는 이를 관용행위라고 자위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타락의 증거인 것이다. 필자의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세례인이 무단히 4주일을 계속하여 공동예배에 결석했을 때는 책벌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권위 있고 신실한 권징을 시행하는 교회를 좀처럼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면 이것이 과연 교회의 발전이요 성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대다수는 신학부재에다가 윤리부재를 더한 난맥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염려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난맥상은 권징부재가 초래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권징은 교회의 윤리 확립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리의 순전을 유지하며 성례의 신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신실히 시행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의 광명이 악령의 위세에 일식(日蝕)을 당하게 되며，그렇게 되면 교회의 비교회화(非敎會化) 현상을 빚어내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소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