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서 약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백신’ 이야기이다. 백신. 이게 흔히 쓰이는 말이긴 한데, 우리말인지 외래어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적잖다. 백신(vaccine)은 라틴어이다. 암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우두. 그러니까 바이러스에 의한 소의 급성 전염성질이지? 이거에 감염된 채 소젖을 짜고 있던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에게서 한 남자가 우두 고름을 뽑았다. 사실 누구라도 가까이하기도 싫은 우두 고름은 이 남자에 의해 인체에 천연두 면역을 만들어 예방하는 물질로 변모했다. 이 남자는 18세기 영국사람 에드워드 제너라는 사람이다. 소년 한 명에게만 임상 실험을 한 것이 천연두 예방의 특효약이 됐다. 결국 제너의 이 성과는 인류가 새로운 질병이 생길 때마다 백신을 만들게 된 배경이 되고 있다.

백신으로 치료될 수 있는 병은 몇 가지나 될까. 현재 지구상에 나타난 인간의 질병은 3만여 가지라고 한다. 모든 병에 다 백신이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유전공학을 이용한 신약(新藥) 개발이 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전체 질병의 60%까지 백신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젠 백신이 예방약뿐 아니라 치료약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암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백신이 나올 날도 머지않아 올 가능성도 있다.

백신 때문에 돈 벌이 하는 기업은, 그런데 소수이다. 미국·스위스·영국 같은 선진국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국가들, 감히 엄두나 낼까? 따라서 이런 국가들은 신약 업체를 자기 나라로 유치하기 위해 애쓴다. 아시아 '의료 허브'를 내세운 싱가포르는 10만 달러 이상 투자하거나 생산액의 20% 이상을 수출하겠다고 하면 법인세를 5년에서 10년 동안 면제하고, 공짜 부지를 제공하는 이런 좋은 조건을 내걸고 손짓한다. 지금 싱가포르 의료복합단지엔 화이자·노바티스 같은, 알려진 다국적 제약회사의 연구기관과 생산 공장이 몰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세계 제1위 제약사 화이자의 혈중 콜레스테롤 강하제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해 세계에서 7600만 명이 복용한다. 작년 매출액만 13조원이다. 약 한 가지가 우리나라 한 해 전체 약 매출액 14조원과 맞먹을 정도다. 신약 개발엔 평균 연구비 1조원과 개발기간 14년이 필요하다. 게다가 성공할 확률은 0.001%이지만 개발에 성공하면 평균 개발비용의 10배가 넘는 돈을 거둬들이니 나쁘지 않은 장사인 셈이지.

특허권 때문에 백신 접종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몇 해 전 방콕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에이즈 환자와 시민운동가 200여명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미국 제약회사 브리스톨 마이어스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에이즈 치료제 디다노신의 생산 허용을 요구한 것이다. 한 달에 150달러나 되는 약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미국과 유럽의 백신 업체가 가격 짬짜미를 형성해 전 세계 비타민 시장을 나눠가진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들의 조직적 움직임은 마치 한 개의 기업처럼 일사불란해 ‘희대의 담합’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백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타미플루의 특허권도 주목받는다. 특허권을 가진 회사는 스위스의 로슈사이다. 이 로슈사가 생산하는 ‘타미플루’가 현재 유일한 신종플루 치료제이란 사실이다. 세계 각국은 ‘타미플루’의 비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물량이 달리고 있다. 로슈에 특허권을 포기하고 저렴한 카피약 시판을 허용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가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직전 유엔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까지 나서 “제약회사들의 특허권이 가난한 나라 지원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로슈의 양보를 당부했다. 그러나 로슈는 다른 제약사들에는 백신을 만들기까지 과정이 너무 복잡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제안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이 얘기 듣다보면 세계보건기구 이종욱 사무총장이 떠오른다. 이 분은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렸지? 이 분은 94년 WHO 백신국장이 되면서 소아마비 환자를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줄여 미국의 '사이언틱 아메리카'로부터 '백신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3년 WHO 사무총장이 된 후 연간 30만㎞ 이상 비행기를 타며 미국, 프랑스, 러시아 정상들에게 의료펀드 확대를 호소했다.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을 자리에 앉은 분이었지만, 늘 2등석 비행기를 고집하며 집 한 채 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분으로 우리는 기억하지?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으로 호강을 할 수 없다' 이러면서 약자의 편에 서려했던 분, 고 이종욱 사무총장이었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특효백신이란 얘기도 나온다. 김치 이야기 좀 해볼까? 배추를 소금으로 절인 후 파·마늘·생강·고춧가루·젓갈을 넣고 버무려 발효시킨 것이 김치다. 각 재료들은 고유한 영양소를 갖고 있다. 배추에 들어있는 케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작용하고 대장암을 예방한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대사 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식욕을 촉진시키고 체내의 지방 축적을 막아준다. 마늘의 알리신은 비타민B1의 흡수를 촉진시키며 알칼리를 공급해 체액의 균형을 조절해 준다. 이미 발효가 된 상태의 젓갈은 김치의 숙성을 촉진시키면서 아미노산 함량을 높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재료에 포함된 영양소들이 김치가 발효하는 과정에서 서로 복합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즉 사스가 전 세계를 떨게 만들었던 2002년에 김치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됐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김치가 사스 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김치는 숙성되면서 다양한 유산균을 만들고 각종 비타민의 함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김치는 소화촉진·면역성 강화의 생체조절 기능과 항암·항균·항돌연변이의 질병예방 기능, 항산화 등 노화억제 기능을 한다. 안타깝게도 신종플루에도 예방 효과가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데, 아직 검증된 바는 없지만 하루 새만 명 씩 증가하는 감염환자를 보면, 신종플루의 힘까지 누르지는 못하는 듯싶다.

사실 백신은 약효를 떠나서 심리적 안정 효과 때문에 접종한다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짜 백신도 나돈다. 유효 기간이 지나 효능이 없는 독감 백신이 유통되거나 접종되는 일이 간혹 있었다. 이런 의미 없는 백신을 가리켜 속칭 ‘물 백신’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무면허 업자뿐 아니라 의사까지 개입해 1년 동안 학생 해서 9만5000명에게 접종했다고 한다. 일부는 20년 가까이 ‘물 백신 장사’를 해 왔다는 혐의를 받았다고 하지. 물론 의약품의 허술한 유통 구조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직도 상당수 과학자들은 백신이 속임수라고 주장한다고 들었다. 자연 상태에 있는 세균들은 인간을 공격한 뒤 저절로 물러가거나 인간의 자연면역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지 백신 때문에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변종된 세균이 또 다른 사망 원인을 만들 뿐만 아니라 대량 예방접종이 인체의 자연적인 면역력을 퇴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지금은 타미플루가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예방책이다. 속임수라고 외면할 여지가 없다. 보건 당국은 열나면 무조건 처방 받아 복용하라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