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즉 패배자다”라고 발언하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사자가 거듭 사과하고 있지만 파문은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방송 제작진은 사과 뿐 아니라 교체라는 후폭풍을 맞았다. 또 저신장 장애인들의 모임인 '한국작은키모임'은 방송사측의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KBS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줄을 잇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녹화 방송이었는데도 출연자의 부적절한 발언을 수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자막 처리까지 해서 주목도를 높였다며, 사전에 기획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루저’라는 말의 기원, 무엇일까. 사실 패배자를 뜻하는 루저라는 말은 레슬링 경기에서 나왔다. 레슬링은 준 결선에 올랐다가 패배한 선수에게 금메달까지는 넘볼 수 없지만 동메달에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패자부활전에서 최종적으로 패한 선수를 ‘루저(loser)’라 부른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는 ‘루저’라는 말이, 상대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표현으로 통한다고 한다.

외모를 아무리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그걸 패배로 규정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영장류 동물학과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바바라 스머츠 박사는 여성들이 키 큰 남자를 선호하는 것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인 '신체보호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디 인류의 진화 과정인가. 달나라에 사람이 가서 광물을 캐오는 시기 아닌가. 흥미로운 점은 바바라 스머츠 교수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미시간 주가 키 차별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고,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와 호주의 빅토리아 주에서도 키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못 박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이렇게 법제화될 정도면 사람의 신장이 차별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펭이 쓴 책 ‘키는 권력이다’를 보면 이런 놀라운 내용이 있다. “하버드대학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 CEO의 60%가 180㎝가 넘는다. 미국 성인남자 평균보다 10㎝가 더 큰 편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조사에서는 키가 큰 남자의 수입이 적은 남자보다 높게 나왔다. 미국의 경우 키가 1인치(2.5㎝) 커질 때마다 연평균 임금이 789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조사에서는 키 큰 남자가 더 일찍 배우자를 얻었으며, 스웨덴에서는 키가 5㎝ 커지면 자살 위험이 9% 낮아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을 중요시하는 외모지상주의, 이를 루키즘이라고 하는데, 현대 사회에서 여성은 몸무게로 차별을 받는 반면, 남성은 키로 차별을 받는다. 여성이 키 큰 남성을 선호하는 것은 체격에 따른 지배구조의 전복을 바라지 않고 ‘키의 프리미엄’을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는 한 방법으로 여기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자 키 160㎝ 이하, 남자 키 170㎝ 이하면 ‘9급 장애’라는 아주 위험하고 반인권적인 농담이 오가는 현실에서 니콜라 에르펭은 ‘작은 키’ 역시 소득 양극화나 남녀차별, 인종차별, 동성애자 차별처럼 사회적인 논의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왜냐. 키는 남자와 여자로 구별되는 점이나, 인종이나, 또 성적 취향처럼 어디 노력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루키즘,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의미 없고, 외모가 개인의 우열과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는, 저급한 신념, 이번 기회에 일침을 가해졌으면 한다. 그 흐름에 편승해 시청률 경쟁의 도구로 활용한 방송사의 몰지각성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다만, 출연자의 의견에 이견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사생활까지 들춰내는 걸로도 모자라 “너는 예쁘냐” 이런 식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비난하는 행위는 마땅히 자제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