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얼마 전 탄소 배출량을 무려 30%나 줄이겠다며 큰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복 입고 다니기 운동이 되겠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위원들도 내복 입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데. 내복을 입게 되면 체온이 올라가 난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에너지 소모가 줄어 탄소 소비를 덩달아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그래서 ‘내복 바람’ 이야기 해보려 한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기습한파에다 신종플루 때문에 내의를 찾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실제로 국내 한 대형 백화점의 자료를 보면, 최근 한 달 동안에 내복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가량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내복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입는 사람의 체감온도를 3도 이상 높이는 보온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겨울철에 내복을 입으면 겨울 난방에너지 소비를 20%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 때문에 생기는 연간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2천 4백만 톤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또 과도한 난방으로 인한 아토피 피부염이라던지 가려움증 같은 환경성 질환도 방지할 수 있다.

내복의 역사는 어떨까. 투피스형태의 ‘튜닉’이 그 시초가 아닐까 싶다. 고대 서양의 남녀가 소매가 없는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하지? 이건 속옷과 겉옷을 겸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내복의 기원을 추리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등장하는 인물의 옷소매 밖으로 ‘내복’ 으로 추정되는 옷이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도 ‘내의’ 혹은 ‘내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저고리나 속치마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옷의 모양새에 큰 차이가 있었는데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 시대에 내복은 1960년대 그 모양새가 굳어졌다.

예전에는 첫 봉급을 타면 부모님께 드리는 첫 선물이 내복이었다. 지금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 내의만큼 좋은 선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전유물이었다. 젊은이들은 그동안 내복을 기피했다. 왜 일까. 겉옷 모양을 망친다는 것이었다. 두껍고 투박해 뚱뚱해 보이는데다 여자 것은 빨강이나 분홍, 남자 것은 누런색이어서 어쩌다 소매나 바짓가랑이 사이로 드러나기라도 하면 촌스럽기 그지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건물의 난방상태가 좋아지고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면서 내복은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요즘 내복은 많이 좋아졌다. 남자내복도 겉옷맵시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만큼 얇고 신축성 있고 착용감 좋은 것들이 많다. 여성용으론 아래위가 붙어 겉옷에 내의라인이 전혀 안 드러나는 보디슈트가 유행이다. 요즘엔 또 에너지 줄이자는 목소리도 커진 형편이어서 내복의 기능성 또 긍정적 파급력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실내가 다소 서늘해야 건조해지지 않아 감기도 덜 걸린다고 한다. 내복을 입으면 난방비와 전기료 절약에 감기예방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복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사례는 어떨까. 2005년 일본 정부는 환경성 주도로 '쿨비즈'캠페인을 전개했다. 넥타이와 재킷을 벗고 대신 와이셔츠나 반소매 간편복으로 일하며 냉방소비를 줄이자는 여름 캠페인이었다. 40%가 넘는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면서 3개월간 진행된 쿨비즈로 7000만kwH의 전력이 절감됐고 이는 24만 가구가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노타이 캠페인’도 있는데, 넥타이를 매면 산소 호흡량이 7% 감소하고 두뇌회전도 크게 떨어진다는 조사결과에 근거한 캠페인이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쿨비즈가 성공하자 겨울철엔 실내온도를 낮추고 내의나 두꺼운 옷을 입도록 권장하는 '웜비즈' 운동까지 펼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실행하는 공공기관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서울 서초구청에서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내복 입기 실시로 난방비를 크게 줄였다.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난방비가 한 26% 정도 절약이 됐습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600만 원 이상 절약한 것이 된다”라고 밝혔다. 올해 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에너지절약을 '제5의 에너지'라고 이름 붙였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또 하나의 에너지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입는 내복은 훌륭한 에너지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