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대화가 협상이고, 협상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협상이 바로 인질 협상이다. ‘네고시에이터’ 얘기를 해보려 한다. 네고시에이터는 ‘인질 협상가’를 말하지? ‘네고시에이터’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다. 이 영화의 묘미는 ‘협상의 진수’를 맛있게 보여줬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이었던 두 협상가는 협상의 대원칙인 ‘샌드위치 화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샌드위치 화법’은 긍정의 말로 대화를 시작해 단점이나 질책 같은 해야 할 얘기를 한 후 다시 긍정적인 말로 마무리하는 대화법이다. 샌드위치처럼 핵심 내용을 칭찬 가운데에 삽입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핵심 의견을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에게 부분적으로 동감을 표시해 상대방이 기분 좋게 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바람을 전달한 다음에는 다시 한 번 상대방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게 요령이라 하겠다. 결국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상대가 밉더라도 일단 긍정적인 화법으로 해법을 찾자는 원리이다.

일전에 경기 용인에 있는 경찰대학에서 열린 무장탈영병의 인질 사태를 가정한 역할극 교육이 있었다. "소방서에서 나왔습니다.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왜 죽으려고 합니까?" "소방관이면 불이나 꺼. 나 같은 인생 실패자는 죽게 놔두란 말이야." "왜 본인이 인생 실패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경찰이야? 나 취조해? 자꾸 짜증나게 하면 나 진짜 뛰어내린다." 당황한 협상관은 건물 옥상 난간에 매달린 남자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다섯 세고 죽겠다"고 선언한 남자는 정말 숫자를 세더니 괴성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5분만에 상황 종료. 가상이기에 망정이지, 실전이었으면 이 소방관, 정말 낭패를 겪지 않았을까.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최성재 경찰대 교수는 "취조식 대화법은 상대에게 압박을 준다. 협상가는 정보를 얻는 대신 도움을 주러 왔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고 지도했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진압 아니면 협상이다. 하지만 진압 방식은 극도로 흥분한 인질범을 자극해 무고한 인질을 희생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진압 중 사상자 발생 확률이 무려 78%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협상하는 게 바람직할까. 세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시간을 끌어라. 시간을 끌수록 범인이 △스스로를 반추하게 되고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지며 △인질과의 인간적 유대가 형성될 공산이 커진다. “정확히 1시간 뒤까지 답변을 주겠다”는 식으로 범인의 희망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지연한다. 인질범의관심사는 요구사항(대부분 돈)이지 인질이 아니다. 전화 협상의 경우 인질범을 흥분시키면서도 요구사항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켜 인질을 해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딜을 하라는 것이다. 협상 시간이 늘어나면 범인은 음식, 물, 애인과의 대면, 형량 감면 등을 추가 요구한다. 절대로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지만, ‘공짜’는 없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빵과 우유를 달라.”이러면 “좋다. 빵과 우유를 주는 대신 임산부와 아이들은 풀어줘라. 내 얼굴을 세워줘야 재량권을 더 발휘할 것 아닌가.”라고 한다. 대신 최고급 음식으로 대접한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범인은 ‘지금 죽으면 이런 음식도 더 이상 먹지 못하겠지…’하는 아쉬움과 함께 생에 대한 애착을 갖는다.

세 번째는 인질범에게 죄책감을 주라는 것이다. 경찰청 경비과 박노현 대테러계장은 “인질범의 심리상태를 공백 상태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깨우침을 갖도록 일종의 ‘심리 조종’을 하는 것. 어머니를 인질범과 대면시키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만남은 적절하지 않다. 범죄자 중 다수는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학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애인과의 대면도 협상에 치명타다. 범인이 애인에게는 극도의 수치심과 자존심이 상함을 느낀다.

김선일 씨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정부의 대처가 매우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생각이 난다. 이라크 무장조직 알카에다에서 철군을 요구했지? 우리는 즉각 “파병 계획에 변함이 없다”라고 했다. 일찌감치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은 것이지.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김선일 씨는 얼마 안 있어 시신을 발견됐다. 원칙이 그렇더라도 현실은 원칙을 앞세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안에는 네고시에이터를 위한 전담 조직은 물론이고, 전문가 양성 과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찰, 군, 해경에 전문 협상팀이 있지만 테러 발생시에만 동원된다. 이렇다 보니 위기협상은 현장 요원이 진압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자 떠맡는 가욋일 취급을 받고 있다.

또 다시 아프가니스탄 파병 얘기가 나온다. 샘물교회 청년들의 피랍 사건도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상황, 철저하게 대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