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70세, 고희(古稀)의 나이가 된다. 예부터 세대별로 구분을 지어 이름을 붙였다. *10대:충년(沖年) *15세:지학(志學) *20세:약관(弱冠) *30세:이립(而立) *40세:불혼(不惑) *50세:지천명(知天命) *60세:이순(耳順) *70세:고희(古稀), 종심(從心) *77세:희수(喜壽) *88세:미수(米壽) *99세:백수(白壽) *100세:상수(上壽)라 했다. 고희(古稀)란 ‘옛날부터 드물다’라는 뜻으로, 두보의 곡강시(曲江詩) 가운데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만큼 예전에는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말이다.

나이가 6자가 붙기 시작할 때도 기분이 언짢았고 만65세 되어 경로증이 나왔을 때도 일부러 지하철에서 노인우대를 위한 무임승차권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7자를 붙이게 되었으니 누가 보아도 노년의 나이임을 피할 길이 없다. 아직도 무엇이든지 할 것 같은 마음인데 어쩌다가 이런 나이에 이르렀는지 왜인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마음으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은 100세까지 능히 사는 시대가 아니냐? 그러므로 과거로 치면 내 나이에서 10년씩은 감해야 맞는 나이이다.”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여하튼 세월과 함께 새겨진 나이를 어찌 지울 수 있으랴.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거기에 매이지는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2010년 새해를 맞기로 했다. 일전에 우리 부부에게 큰 아들 부부가 ‘내년에 칠순이 되시는 데 음식점을 빌려서 잔치를 해야 되지 않나요?’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펄쩍 뛰면서 ‘그런 소리를 하지 말아라. 이제는 누가 칠순 잔치를 한다고 초청하면 싫은 소리 듣는다. 우리는 그 때에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올 예정이니 딴소리 말아라.’고 했다.

정말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인 냄새를 풍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다. 문제는 앞으로 삶의 질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에 있다. 노인이거니 여기고 의욕을 잃은 초라한 삶을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어주신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요즈음의 삶은 나에게는 황금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70년은 쉴 틈이 거의 없는 바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지 집에서 키우는 소에게 꼴을 먹이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지게를 지고 나서야 했고, 고등학교 1-2년 시절에는 집안 형편상 야간부를 다니며 낮에는 조그마한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대학시절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4년 내내 가정교사를 했고, 틈만 나면 신춘문예에 응모 하기위해 소설을 쓴다고 진력을 쏟기도 함으로 다른 친구들처럼 젊음을 즐길 시간들이 전혀 없었다. 대학1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을 때도 하필이면 내무반에서 살림 역할을 하는 기재계 (소대 공급계)를 맡음으로 바쁜 1년 반을 보내고 제대를 하였다. 대학을 졸업 후 장신대(長神大)에 입학한 후에도 농촌교회 교육전도사를 맡은 관계로 토요일과 주일은 교회학교, 찬양대, 상록회(청소년), 교우 심방을 해야 했고, 신학교에서는 학교신문인「神學春秋」지의 편집장을 맡아 거의 두 달 간격으로 발간하노라 분주다망한 3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가장 시간이 많았던 때가 시골교회 시절이다. 대심방이라도 일주일이면 끝날 정도로 교인수가 많지 않았기에 많은 시간들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중학교도 못 간 청소년들이 많아서 교회 주관하에 자원교사 몇 명을 중심으로 2년제 재건학교를 시작하였는데 학생수가 많을 때는 50-60명이 될 정도였다. 처음에는 활기가 넘칠 정도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교사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빠지다 보니 보강(補講)의 역할은 자연적으로 담임목사인 내가 맡게 됨으로 여러 시간을 떠들다 보면 저녁이면 녹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나야말로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탄하기를 ‘나는 이름이 태복(泰福)이 아니라 사복(事福)이라고 해야 옳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골교회 7년 사역을 마치고 홍익교회 부임해서도 일복은 멈추지 않았다. 부교역자나 관리인 없이 우리 부부가 도맡아 교회성장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다 보니 새벽부터 밤중까지 쉴 틈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월요일 쉬는 날이 의례 있지만, 당시는 대심방도 월요일부터 시작하여 금요일까지 봄가을로 한 차례씩 했었다. 여름휴가 때도 의례히 교인들을 데리고 기도원 가고는 했다.

안식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1982년 교회를 건축할 때부터 시작된 밤9시기도회를 25년이 계속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련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특별히 1989년부터 노회에서 부회록서기직을 맡기 시작하고 회록서기 2년 서기 2년, 부노회장, 노회장 등 무려 7년을 봉사했고, 많은 교회 수습전권위원회와 노회보 편집위원장을 10여년 맡다보니 언제나 수첩이 빼곡할 정도의 일정들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33년의 날들이 지나가고 조기은퇴의 날을 맞은 것이다.

너무나 바쁜 세월을 보내면서 긴장으로 일관한 탓인지 은퇴한지 2년이 되었어도 전혀 아쉬움이 없다. 과거에는 항상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중압감과 좋은 설교를 해야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려야 했다. 노회와 총회에서 맡긴 일들이 성가실 뿐 아니라 사방팔방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의 소리에 일일이 돕지 못함으로 안타까움에 고통스러울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은퇴한 지금은 무엇을 하든 누구 하나 간섭하는 이나 눈총을 주지 않는 가운데 무한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내게는 황금기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승용차에 카메라를 싣고 어디 훌쩍 떠나든지, 그렇게 가고 싶던 산을 찾아 부부가 여유 있게 등산하든지, 왼종일 들어앉아서 재밌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든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영국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의 축구를 보든지, 아니면 어느 때는 유명한 고수(高手)들의 바둑시합을 보기 위해 많은 시간에 매여 있든지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귀한 시간들을 내 즐거움만 위해서도 사용한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마음껏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즐기되 나름대로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찾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해 크리스천웹진「소리」지를 귀한 메시지로 채우기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홍익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