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무실이든 사무실의 정리정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록 비좁고 옹색한 사무실이라도 깨끗이 청소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사무실에 들어가면 그 사무실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깨끗하고 정리된 사람으로 보이지만, 아무리 넓고 좋은 인테리어로 장식된 방일 지라도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방은 그 방주인조차 헤프고 허술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곧잘 우리 직원들에게 내방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으려면 먼저 목회지원실을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라고 당부합니다. 사무실이 지저분하여 일하는 직원조차 지저분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하는 내 사무실, 내 책상 위는 수많은 서류들로 뒤죽박죽이 되어있어 그야말로 무질서하고 혼잡합니다. 각종 공문, 청원서, 사역기획, 계획서, 건의서, 보고서, 기안서, 거기다가 신문과 잡지의 스크랩 조각들, 여기저기서 날아온 원고청탁서, 초청장, 읽다가 접어둔 책이나 잡지들,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받은 명함과 각종 사무용품 등, 내가 봐도 정신이 사나울만큼 많은 것들이 넓은 책상에 가득 흩어져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늘 책상 정리로 한나절을 다 보내지만 화요일만 되면 다시 책상은 품위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면서 저는 늘 ‘그래도 할 일 없어 파리 날리는 책상 보다야 좋지 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귀한 손님을 내 방으로 모시기를 조금은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서재와 접견실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실 책상이 복잡하면 마음도 복잡하고 책상이 무질서하면 마음도 무질서 합니다. 그래서 정리를 할 때면 때론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처넣어 버리는 서류와 문서도 많습니다. E-Mail로 날아드는 스팸메일처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도 아깝지 않을 너무도 뻔한 문서들은 봉투도 뜯지않고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기록을 중시하는 습관때문에 작은 문서도 눈여겨보고 정리하여 두기도 하지만 햇빛도 보지 못한 체 사라지는 문서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문서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강의나 설교를 하는 일도, 문서를 만들고 원고를 집필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오라는 곳도 많고 하라는 일도 많습니다. 거의가 다 들러리 서 달라는 부탁들이지만 그래도 그 많은 전화, 청원, 부탁, 호소를 듣고 수많은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해야할 일도 참으로 많습니다. 때론 별로 소득이 없고 하나님의 영광과 무관한, 사람 얼굴 내고 체면치레하는 일에 들러리를 서야하는 답답한 일도 많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문제로 신경을 쓰게 하고 사역과 무관한 일로 정신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일도 많습니다.

요즘은 “일을 줄여야 한다”라는 충고가 귀에 솔깃합니다. 일찌감치 그랬어야 한다는 때 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실상은 거절을 못하는 나의 약점 때문에 아직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분주합니다. 그러나 새해를 바라보면서 다시 다짐합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 나 아니면 안 되는 일만 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책상 가득히 흩어져 있는 서류나 문서자료 중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주저없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버리고 포기하고 단념하는 일을 연습합니다. 나이가 들면 혼자서 잘 노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괜히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 내가 아니어도 잘 돌아갈 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마땅히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주변에 여러 일들, 정말 불필요한 일로 신경을 쓰고 마음상하게 하는 일들, 비 본래적인 문제로 힘들게 하는 일들을 망각의 쓰레기통으로 과감히 던져버리려 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허접쓰레기들로 부터 자유하려고 합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