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많은 언론의 의학전문기자가 아이티에 급파돼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뉴스 보내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다. 치료도 한다. 이보다 앞서 CNN방송의 기자가 현지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다, 수술할 사람이 없다는 소식에 펜 대신 칼을 들고 의술을 행한 일이 있었다. 특수한 경우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이들은 기자인가, 의사인가. 의사 면허는 있더라도 기자 신분으로 간 것인데 이들의 ‘본령’은 과연 무엇인가. 물론 이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논란거리가 된 경우가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언론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받은 주인공, 케빈 카터이다. 이 사람은 문제의 사진 기사 때문에 극심한 윤리적 논란에 휘말렸다. 문제의 사진 기사가 뭐냐. 수단의 굶주린 어린이가 말라빠진 땅 위에서 기진맥진해 엎드렸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이 아이.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 독수리가 앉아있다.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 사진, 1993년에 뉴욕타임스를 통해 전 세계가 공개됐다. 세계인에게 충격과 비애를 안겨줬다.

당시에는 ‘그 어린이를 구출해야지, 그 아이의 비참한 모습을 찍고 싶었냐’ 이런 논란이 있었다. 케빈 카터는 이 아이와 독수리를 발견한 후 독수리가 날갯짓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기다렸지만, 20여분이 지나도 독수리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비로소 독수리를 쫓아버렸고, 아이는 힘을 내어 일어서서 걸어갔다고 한다. 다시 이야기해, 독수리가 이 아이를 주시하기까지, 이 위험한 장면을 20분 동안이나 지켜봤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아이에게 구조보다 먼저 카메라를 들이댄 것 아니냐” “당신은 또 한 마리의 독수리였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 케빈 카터는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하고 만다.

비난에 못 견뎌 자살한 것일까. 곽윤섭 한겨레신문 사진기자는 자살 배경을 예단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케빈 카터와 연관된 글을 보면,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무렵 큰 비난에 시달렸다"라는 문장 직후에 "결국 케빈 카터는 ….목숨을 끊었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곽윤섭 기자는, 자기가 취재해봤는데, 케빈 카터가 이런 비난에 목숨 끊을 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살 배경이 따로 있었다, 이런 얘기겠지. 어쨌든 이번 사건은 ‘기자에게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먼저일까’하는 고민을 던진다.

이거 사실, 입사시험 때 기자 지망생들한테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명과 보도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인가?’라는 점 말이다. 당사자의 열정이나 일에 대한 의욕을 확인해보려는 의도에서 물어보는 질문이겠지? 언론고시생들이 달달 외워서 들어가는 ‘모범답안’은 이거다. “기자는 사건 현장에 개입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관찰자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인명이 달린 문제일 경우, 인간으로서 생명 구조를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그러나 기자가 냉정한 관찰자가 되기 쉽지 않다. 고도의 자제력, 인간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 때 일화이다. 육상 800미터 경기였다. 골인지점을 마주하는 스탠드 사진기자석에 세계 각국에서 온 수십 명의 기자들이 렌즈를 결승점으로 고정해 놓고 파인더를 응시하고 있었다. 1초도 안 되는 골인 순간이다. 모두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골인하는 순간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렌즈를 가렸다. 앞쪽에 있던 브라질 사진기자가 자기나라 선수가 2등으로 들어오자 흥분해 벌떡 일어서서 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순간 바로 뒤에 있던 일본 사진기자가 화를 버럭 내며 브라질 기자를 발로 차서 꺼꾸러뜨렸다. 그리고 브라질기자 뒤에 있던 '물을 먹은' 사진기자 모두가 그 브라질 기자에게 달려들어 뭇매를 가했다. 브라질 기자의 주체 못할 애국심, 아마도 본국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기자들의 세계는 퍽 냉정하다.

요새는 그런데, 조작된 진실을 보도하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이 시간엔 일본 얘기만 해보겠다. 일본의 한 텔레비전에서 어느 PD가 폭력배들과 짜고 중학생을 폭행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는 ‘이 긴박한 장면, 저희가 단독 취재했습니다’라고 내보냈다. 그러나 진실은 들춰졌고, PD는 체포됐다. 그런가 하면, 1989년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건이긴 하지만 역시 일본의 한 신문의 ‘산호초 오손’사건이 있었다. 멀쩡한 산호를 더럽히고 훼손해 놓고는 ‘산호초 오염, 심각합니다’라고 보도한 것이다. 신문은 사죄기사를 싣고 기자는 파면됐다. 방송 기자들은 특히 연출의 유혹을 많이 받게 되지. 그런데 그거 다 발각되더라.

그러나 이번 아이티 지진 참사현장에서 보여준 기자들의 선행은 ‘본령’에서 어긋났더라도 또는 연출된 것이라도 박수 받아 마땅한 것이다. 사실 아이티는 곳곳이 절체절명의 현장이다. 미국 CNN 방송의 의학전문기자인 산제이 굽타 박사는 취재도중 12세 아이티 소녀의 뇌수술을 훌륭히 해냈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소식에 달려간 것이다. 앞서 25살의 산모가 ABC뉴스의 건강의학전문 수석 편집자인 리처드 베서 박사의 도움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첫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호주의 한 방송사 기자들이 건물 잔해 속에서 18개월 된 아이를 구조하기도 했고.

한국 기자들의 활약상도 대단하다. SBS 조동찬 기자 역시 대학에서 신경외과를 전공한 의학전문기자로 의료봉사단과 함께 현지 병원에서 온종일 진료 등의 활동을 하며 취재를 병행했다. 신재원 MBC 의학전문기자는 30대 아이티인 남성의 탈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동아일보 이진한 기자도 현지에 도착한 지난 23일부터 병원을 돌며 진료를 도왔다. 기자는 냉정한 관찰자여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 인격에 관한한 지독한 박애주의자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기자가 쓴 기사에 진정성이 있는 법이다. 취재 윤리. 기자가 한쪽 편에 서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기자가 인류애의 편에 서는 식의 편향성은 권장할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