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5%’ ‘샐러리맨의 희망’ 어떤 자리인지 잘 아실 거다. 대기업 임원 자리이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가 따라오는 선망의 자리인 것이지. 그러나 이 자리까지 올랐던 한 대기업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업무 부담 때문이란 보도가 뒤 따랐다. 이분들 세계의 명과 암을 이제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임원에 대한 대우가 사실 대단하다. 어제 <중앙일보>가 정리했는데, 대략 이렇다. 재계 1위인 삼성의 경우 업무용 승용차로 그랜저나 오피러스 2.7, SM7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무보의 평균 연봉은 1억5000여만 원이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연봉의 50%가량을 성과급으로 별도 지급한다고 한다. 항공 비즈니스석, 골프 회원권, 정밀 건강검진의 혜택도 부여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1억5000만 원 선의 평균 연봉에다, 성과급을 별도로 지급하는 부분에서 삼성과 대동소이하다. 게다가 법인 휴대전화와, 골프 회원권을 쓸 수 있고, 상무부터 별도의 집무실과 업무를 보조하는 비서도 배치한다고 한다. 월 100만 원이 넘는 판공비도 부여된다고 하고.

혜택만큼 부담이 만만치 않다. 분기·반기별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한다. 실적이 나쁘면 자신 뿐 아니라 부하직원의 성과급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노심초사할 때가 많은 건 당연하겠지? 게다가 노동조합이 보호해 줄 수 없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 게다가 통상 상무보가 상무로 승진하는 비율은 20~30%에 그친다. 2/3 정도가 중도 탈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원을 일컬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임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제가 은사로 모시는 분이 오랜 기간 대기업에서 일했는데, 그만두고 가장 큰 비애가 ‘매월 25일에 누군가 나에게 돈을 부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대기업 임원,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던 날은, 공교롭게도 51번째 생일이다. 여담이지만, 51세는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의 평균 나이이기도 하다. 이 부사장은 연봉이 10억 원 안팎이었고, 6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2년 연속 좌천 인사를 당하면서 쌓인 굴욕감에 마지막 선택을 강요한 것 같다. 연구개발 부문에서 장인 반열에 올랐지만, 인사에서 계속 밀렸고, 그렇게 해서 머물게 된 곳은 공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서 이동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한 정신건강 컨설팅업체가 최근 4년 기업임원 400여명의 심리를 분석했더니 80%가 "무조건 전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창의적인 일이면 힘은 들어도 좋겠지만, 조직 사회의 일원인지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임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한 대기업의 법무담당 간부는 오로지 오너의 명예와 위신을 지키기 위한 미션을 부여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너가 불미스런 혐의로 수사대상이 되고 재판을 받을 때에는, 대학교 또는 고등학교 동기동창 중에 판사, 검사가 된 사람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고 한다. 자신의 개인적 인연도 회사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향응을 베풀고 뇌물을 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고 한다. 이 간부는 자녀가 “아빠는 회사에서 뭐해?”라고 물을 때, 담배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대기업 임원 자리를 성공의 정상으로 생각하고 등반하는 직장인들이 꽤 있을 텐데. 우리가 너무 절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얼마 전 <국민일보> 칼럼을 봤다. 여기에 데이비드 부소라는 사람 이야기가 소개되더라. 35살에 이미 20여개의 기업체를 거느린 백만장자였던 부소. 1974년 겨울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호주의 다윈에 구호활동을 갔다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공이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부소는 그 뒤, 자신이 결코 ‘성공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가’로서 제2의 삶을 살았다.

성공에 대한 철학이 없이 성공을 추구했다가는 그 성공이 성공으로 안 보인다, 이런 얘기이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사회에서는 남들이 오르는 코스를 뒤 따라 오르는 경우가 많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을 품고 책 펴는 학생들,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엄마 아빠가 “너 인마, 놀면 거지꼴을 못 면해! 비참하게 살기 싫으면 좋은 학교 가!” 이러다보니 학생들에게 공부는 성적 향상을 위한 도구가 돼 버린다. 그렇게 해서 학교를 졸업하고 어렵사리 취업한다고 치자. 이때부터는 승진 경쟁에 휘말린다. 잠이 덜 깬 채로 어학원을 다닌다. 성형수술도 한다. 회사에 가서는 남 해코지하면서 자기 실적 과대 포장한다. ‘왜 성공해야 하는가’하는 철학이 없는 인생의 수순이 대개 이렇다는 이야기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제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기업 고위직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윤대현 신경정신과 교수의 진단이 있다. “좌절감·공허함을 호소하는 대기업 임원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진단이었다. 윤대현 교수는 “많은 임원이 능력을 ‘풀가동’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실은 자기 능력의 70% 정도만 일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휴식과 취미생활에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에서, 회사를 위한 영역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한 영역을 만들어 두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왜 사나, 이런 의문을 가져보면, 답이 보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