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배치에도 정치학이 서려있다? 최근 이런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신 분들 많을 거다. 오늘 이 얘기를 좀 더 풀어서 해보려 한다. 국회 본회의장에도 상석이 있다. 선수에 따라, 당내 위치에 따라 좋은 의석, 덜 좋은 의석으로 각각 달리 배치된다는 것이다. TV 뉴스를 유심히 본 분들은 대략 감으로 느끼실 거다. 이른바 잘 나가는 국회의원들, 어느 자리에 주로 앉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본회의장 의석의 맨 뒷줄이 최상석이다. 따라서 뒷줄로 갈수록 정치적 무게감이 있는 인물이 앉아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뒷줄에 배치할까? 우선 그 말에 앞서 누가 그 자리 배치를 하는지 짚어보겠다. 일단 국회는 원내교섭단체를 우대한다. 스무 석의 의원이 있어야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지? 현재 국회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밖에 이 요건에 해당하는 교섭단체가 없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고 해서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하나의 교섭단체를 꾸렸지만 문국현 의원이 의원직을 잃으면서 와해됐다.) 이 교섭단체는 국회로부터 특정 구역을 지정받는다. 좌측, 우측 또는 중간 말이다. 이 구역 안에서 각 교섭단체는 개별 의원의 의석을 배분한다.

교섭단체로서도 자리 배치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에선 대체로 당직을 갖고 있는지, 또 국회의원 몇 번 했는지를 감안해 배치한다. 당 대표였던 사람, 또는 세 번 이상 당선된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주로 뒷자리를 차지한다. 현재 맨 뒷줄에 앉은 주요 인사는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의장석이 앞에 보일 때 좌부터 우까지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의원, 심대평, 이인제 무소속 의원, 박진, 박근혜, 정몽준, 이상득, 안상수 이상 한나라당 의원, 박상천, 김진표, 송영길, 정세균 민주당 의원이다.

유력 정치인은 자기를 중심으로 측근들을 심는다. 지금은 박근혜 전 대표와 소원한 듯 보이지만 최근까지 친박계의 좌장 격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또 다른 친박인 이해봉·김태환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둘러쌌다. 민주당에선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앞줄에 참모인 강기정·노영민·우제창·우윤근 의원이 옮겨 왔다. 한편 비교섭단체 의원은 국회의장이 의석을 정해 준다고 한다. 방청석을 기준으로 좌측 끝 맨 앞자리와 둘째 줄엔 민주노동당 의원, 셋째 줄에는 창조한국당 의원의 자리가 지정돼 있다. 그 열 뒷줄에 친박연대 의원들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가장 앉기 싫은 자리는 바로 맨 앞자리이다. 이 자리에 앉으면 졸면 조는 대로, 자리를 비우면 비우는 대로 표시가 확 난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온 몸에 받아야 한다. 이건 감내할 수 있다. 앞에서 몸싸움이 벌어질 때도 참 불편하다. 지난 해 7월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나타났듯 본회의장 단상 앞으로 기준으로 난장이 벌어지지 않았나?

그래서 궐석인 의원들이 앞자리로 옮겨들 간다. 구속되거나 의원직 사퇴서를 낸 의원의 경우, 원래 앉던 자리에서 앞자리로 바뀌는 일이 있다고 한다.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과 박연차 사건으로 인해 정계 은퇴를 선언한 민주당 이광재 의원도 그 경우이다. 여하간 그래서, 앞자리는 항상 그리 선호되지 않는다.

18대 국회만큼 갈등과 충돌이 심할 때에는 당과 당 사이에 경계지역에 앉은 의원 좌석도 인기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지식경제부 장관에 각각 임명된 뒤 한나라당 전재희·최경환 의원의 자리는 경계 지역으로 이동했다. 재·보선이나 비례대표 승계를 통해 각각 합류한 한나라당 권성동·이두아 의원도 경계 지역에 배치됐다. 이 같은 배치는 물론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당직 개편이 있으면 소폭으로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뒷줄급’인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이 이뤄지면 ‘의석 재배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방청석을 기준으로 17대까지는 현재 보수 성향의 한나라당이 우측에, 진보 성향의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좌측에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18대에 이르러서는, 민주당이 우측 날개에, 실용주의 중도보수 성향의 한나라당이 중앙, 선명 보수를 추구하는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이 좌측 날개를 차지하게 됐다. 물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와 함께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도 좌측을 차지했다.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은 당은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둘인 셈이다.

의석 구조를 보면 마치 날개와 같다. 날개를 뜻하는 한자어로 ‘익’자가 있지? 좌익 우익은 그런 의미에서 각각 좌측 날개와 우측 날개가 되겠다. 공교롭게도 진보 성향을 뜻하는 좌익, 보수 성향을 일컫는 우익은 원래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유래됐다.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의장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왼쪽, 중도파인 마레당이 중앙에 앉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대한민국에 좌우가 어디 있니?’ 이런 반론도 만나게 된다. 이념과 지향점 보다는 특정 지도자의 이해에 맞춰 움직이는 한국 정치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정파의 이념을 새의 날개에 비유했는데, 만약 우리나라 정치를 새에 비유할 때 온 몸에 내상이 생겨 날개조차 못 펴는 중병 상태라고 표현하면 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