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중에 궁예의 관심법이 있었다. 남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라 하겠지? 당시 극중 궁예는 금빛 찬란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외눈을 부릅뜨며 "난 네 마음을 다 읽는다" 이랬지? 궁예 얘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관심법’, 오늘날에는 독심술로 불리는 이 마음 읽는 비법이 이제는 과학의 도움으로 규명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과학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일까? 3년 전인 2007년 2월 8일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사람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 당시 수준은 매우 초보적이었다. 연구대상인 사람이 덧셈을 할지 뺄셈을 할지 맞히는 수준이었다. 물건을 더 살지 아니면 지금 산 것에서 좀 더 뺄지 알아맞힌다는 것이다. 뇌영상장비와 첨단 통계기법을 이용해 말이지. 정확도는 70%라고 한다.

아직은 상당히 초보적인 단계였다. ‘내일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생각’을 맞힌 게 아니라 ‘3, 4초 후에 할 의도’를 맞힌 것이다. 사실 이런 독심술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가장 유용하겠지? 그러나 현재 수준은 ‘A라는 사람이 총을 쏠지 말지’를 알아봤을 때, ‘쏜다’는 것은 가늠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 쏘겠다’는 것인지, ‘사격훈련장에 가서 합법적으로 쏘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까지 명확하게 가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을 쏜다’ 정도만 맞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3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은 좀 더 진척되지 않았을까. 그렇다. 2008년 잭 갤란트라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신경과학자가 쓴 논문이 '네이처'에 실렸다. 뇌의 일부분을 스캔해서 정보를 읽으면 이 뇌의 소유자인 사람이 본 영상을 식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미국 신경과학회 총회에서는 뇌를 스캔해서 이 사람이 뭔 영화를 봤는지 알아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고 한다. 성폭행 범이 전날 음란 동영상을 봤는지 알아낼 수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진일보한 셈이군. 뇌에 있는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 이것 참 기막힌 기술인데. 지금도 뇌에 대한 스캔 기술이 더욱 진화되고 있다. 그래서 뇌의 활동을 측정하고, 수치화하는 일이 최우선적인 연구과제이다. 이렇게 수치화한 뇌의 활동 정보를 컴퓨터로 가져오면, 유사한 뇌의 활동 패턴을 찾아낸다. 이로써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리 범죄사건과 연관된 얼굴, 지문, 목소리를 컴퓨터에 등록시켜 놓는다. 그리고 연구 대상인 사람에게 범죄와 연관한 내용으로 취조를 한다. 그래서 피의자의 뇌에서 이 정보와 일치하는 수치가 발생하면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제 미제사건은 제로에 도전할 수 있는 길도 머지않은 것 같다. <파이낸셜뉴스> 오늘자를 보니까 이런 가상 시나리오가 실렸더라. 형사들이 폭력혐의로 붙잡혀 온 A씨에 대한 심문이 한창이다. 형사들은 A씨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자 피해자 B씨의 과거 기억을 컴퓨터에 다운로드받아 당시 상황을 가상현실로 재현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술에 취한 A씨가 행인 B씨를 무참히 폭행하는 모습이 선명히 나왔다. 결국 A씨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여튼 범죄 예방 또 조사에만 제한적으로 써야지, 이것과 무관하게 비윤리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런데 기계에 의존하는 것보다, 비과학적인 것 같지만, 사람이 사람마음을 가장 잘 알지 않을까. 그렇다. 다양한 생김새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각자 다 다르다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양해 봤자’라는 것이다. 인간도 결국 한 사회의 문화와 관습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한편, 감정과 이성, 그리고 의지력, 선천적인 성향, 어린 시절의 경험, 청소년기의 경험, 성인의 경험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버무려진 게 인간의 생각인데, 스캔한 뇌의 일부분이 이걸 다 설명해줄 수 있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전문적인 심리사가 직접 대면해서 인격 대 인격으로 소통하는 과정, 이 과정에서 얻어내는 정보가 가장 정확도가 높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상대방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이해하는 부류의 직업인으로 텔레마케터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고객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거의 독심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상대방이 흥분하거나 불쾌한 어조로 ‘여보세요’ 이렇게 접근할 경우, 텔레마케터들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라는 밝은 목소리에서 “네 고객님” 이렇게 공손한 어조로 바뀐다. 텔레마케터들은 ‘늘 고객이 어떤 분일까’, ‘어떻게 대해야 기분을 좋게 할까’를 늘 염두에 둔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다짜고짜 원성을 듣는 일이 많을 텐데.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기술 발달로 고객의 목소리를 인식하면 호흡상태, 소리의 파동 정도, 말의 속도를 판단해 고객의 기분과 취향을 판독해주는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한다. 전화에 ‘지금 화 난 고객이 전화했음’을 뜻하는 빨간불이 들어오면, 텔레마케터는 연결될 때부터 “어머 고객님, 얼마나 화나셨으면 전화 주셨을까요?”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어쨌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알기란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