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시선이 밴쿠버에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 이정수, 모태범, 이상화 선수를 비롯한 한국선수들이 빙속(氷速) 역사를 새로 쓰면서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뒤편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인 선수가 있다. 한국 빙상계의 맏형 이규혁이다. 눈물을 흘리던 이규혁 선수의 모습을 보며, 같이 마음으로 울지 않았던 국민이 있었을까 싶다. 불운하다는 표현, 과장이 아니다. 13살 때 태극마크를 단 이후 이번 밴쿠버 대회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 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규혁도 무관이건만 영웅이다. 그의 노력과 눈물을 국민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역대 올림픽의 무관의 영웅을 만나보겠다.

비운의 챔프 백종섭 선수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생애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출전을 포기해야 했던 주인공 아닌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일이다. 복싱의 백종섭은 라이트급 국가대표로 활약해 왔지만 각종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8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면 군 입대로 운동과 멀어질 수도 있는 상황. 배수의 진을 치고 링에 올랐다. 그런데 8강 문턱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목과 가슴을 후비는 통증이 찾아온 것이다. 기관지 파열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링 위에서 죽겠다”며 출전을 호소했지만, 결국 기권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내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고 있는 남편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때 역도 이배영 선수도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용상 1차 시기에서 발목이 접질리면서 다리에 심한 경련이 일었다. 이를 악물고 마지막 시기에 도전했지만 앞으로 넘어지면서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쓰러진 순간에도 바벨을 손에서 떼지 않았던 이배영 선수 모습에 많은 국민들 안타까움과 함께 투지어린 승부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는 미소까지 지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배영 선수. 그렇게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스마일 역사’는 하지만,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8년 연속 3관왕을 휩쓸며 ‘훨훨’ 날았다. 그는 현재진행형이다.

메달 운이 없기는 ‘봉달이’ 이봉주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봉주 선수 역시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몸이다. 현역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무대는 우리 나이 마흔에 마흔 번째 풀코스를 완주했던 경기였다. 주마등처럼 스쳤다.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의 기록. 이건 아직도 깨지지 않는 한국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준우승을 차지한 애틀랜타 올림픽과 우승을 거둔 보스턴 마라톤, 그리고 24위를 차지한 시드니 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술회한다.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국민의 하늘같은 성원을 받았지만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불운에 울어야 했었다. 다른 선수와의 충돌로 넘어지며 경기를 망친 것이다. 아테네에서도 1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 획득 여부만으로는 이봉주의 마라톤 인생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수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었는데, 심판 오심으로 인해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경우도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선, 한국대표팀의 중심축이었던 양태영은 눈앞에서 금메달을 도둑맞는(?) 시련을 겪었다.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유력시되던 금메달을 미국의 폴 햄에게 넘겨줘야 했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결국, 양태영은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아오지 못했고, 그 일이 있고 4년 후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명예회복을 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꼭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승리자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법이다. 본인이 그 아픈 기억을 잘 감내하고, 또 이 기억이 상처만은 아니라며 삶의 밑거름으로 삼았다면, 이건 더 이상 ‘비운’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비단 선수생활을 접었더라도 그 실패는 새로운 도전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료에 걸려 넘어지고, 또 간발의 차이로 메달과 멀어진 쇼트트랙의 성시백 선수. 이 아픔을 딛고 토요일인 27일 500미터와 5000미터 계주 결승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특히 "다 같은 아들"이라며 이호석을 오히려 격려한 성시백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웃음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 저 뿐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