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 사실 흔히 쓰는 말은 아니지. 이런 예를 들어보겠다. 스페인 북쪽에 가면 빌바오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얼마 전까지 참 우울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중심 산업지구였는데 대공황이 확산되면서 그야말로 황폐화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반전을 이뤘다. 이곳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가 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구겐하임 미술관, 교양 있는 분들은 한 번쯤 이름만이라도 들어봤을 미술관이다. 미술관 하나 들어온 게 전부일까? 그렇다. 전부이다. 그런데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고 이곳은 세계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도시가 황폐화됐을 때 정치인들이 미술관 유치에 앞장섰다고 한다. 물론 주민들 “아니 어디 아프냐. 지금 우리 먹고 살 돈이 없는데 미술관 유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느냐”며 거칠게 저항했다. 그러나 뚝심으로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문화와 투자의 융합으로 관광을 창출해낸 것

어렵게 말 풀이할 필요가 없다. 이게 바로 통섭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올해의 발명’으로 선정한 것이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김상배 연구원이 만든 ‘끈적이 로봇’이다. ‘끈적이 로봇’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로봇공학만 쓰인 게 아니다. 도마뱀에 대한 생태연구 즉 생물학도 큰 몫을 담당했다.

통섭이란 것이 사전에서는 ‘전체를 도맡아 다스림’이라고 풀이하는데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인데. 이 윌슨 교수의 책을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우리말로 펴내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 20세기가 학문의 분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학문의 통합 시대, 즉 갈래갈래 나뉜 학문을 엮어서 한 차원 높은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시대라고들 하지? 이게 바로 통섭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사실 이과는 이과대로, 문과는 문과대로 갈리는 게 하나의 상식처럼 굳어지지 않았나. 이건 사실 뿌리가 있다. 최초의 학문하면 말하는 기술을 뜻하는 수사학과 수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하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사학 기하학의 전통은 중세시대까지 이어지다가 1100년대에 이르러 수사학, 문법학, 논리학 오늘로 말하자면 문과라 할 수 있는 3학과, 기하학, 산술, 천문학 그리고 성격은 좀 다른데 음악까지 해서 이과라 말할 수 있는 4학으로 갈라지게 된다.

통섭이 최근에 나온 것 같지만 실은 200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실현한 게 아닌가 싶다. 화가 과학자 수학자 그리고 철학자였던 그 아닌가? 투시도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근법,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그리고 수많은 기계 설계도를 남겼다. 프랑스에서 운하 공사를 하다 죽음을 맞았으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토목학자이기도 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자신이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스스로 뛰어난 지질학자임을 보여 주기도 했지?

지식의 대통합은 요즘 산업현장에서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같다. 요즘 인문학에 심취한 CEO들이 꽤 많다. 포스코가 사내에 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논어 맹자 같은 고전에서부터 문학 사학 철학 고고학까지가 인문학 전 분야다. 세계적 기업으로 크기 위해선 인문학 지식과 실무 능력을 두루 갖춘 '통섭의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준양 회장의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들으려면 듣고 말면 말고가 아니다. 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의무적으로 정기 수강하도록 했다고 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으면 회사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다. 무려 2억대 가까이 팔린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매혹적인 디자인도 대학 시절 수강한 서예 강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잡스는 털어놨었지? 인문학의 지식과 소양이 잡스를 '창의적 경영자의 대명사'로 올려놓는데 힘이 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의 감독 캐머런도 따지고 보니 대학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 통섭의 일생이 있었기 때문에 첨단기술과 대중적 스토리, 환경, 반전, 반제국주의라는 시대정신을 한 영화에 쓸어 담을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오늘 이 아이템을 정하게 된 배경은 며칠 전 한 방송사에 출연한 최재천 교수의 강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는 대한민국이 대(大) 학문국(學問國)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자들이 많은 나라, 학문이라면 세계가 한국을 가장 먼저 꼽는, 학문의 수준과 힘이 국가 브랜드가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갈 길이 참 멀다. 그 첫 번째 걸림돌은 문과와 이과, 인문ㆍ사회계와 이공계로 나누어져 있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다. 최재천 교수는 이걸 빨리 허물자는 주장이다.

'너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너는 글을 못 쓰니까 이과' 하는 식의 무지막지한 구분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신과 다른,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이다. 종교와 과학이, 예술과 기술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나? 이념과 이념의 벽은 또 어떤가. 대세인 통섭으로 가는 길, 그 앞에 참 많은 벽이 보인다. 어느 세월에 이걸 해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