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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기쁘게 하는 것들 |
| [내가 바라는 목회자 부인 ⑪] 목회자가 나무라면 부인은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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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연한 가을의 풍요 속으로 겨울은 고양이 걸음으로 스미어 들고 있듯이, 목회의 생활은 기쁨과 슬픔이 언제나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交叉)되고 있음을 언제나 느끼게 한다. 기쁨에 들떠서 축제(祝祭)의 송가를 부르고 있는 동안, 슬픔은 검은 조복을 입고 문에서 노크를 하고 있다.
1. 슬프게 하는 것들
목회자 부인의 슬픔은 목회의 생리(生理)가 유랑벽에 있음에 기인된다. 어느 날 그처럼 정성을 다해 가꾸어 놓은 화원(花園)과 아침저녁으로 손길이 닿았던 복도와 벽의 그림들과 부엌의 내부들을 버려두고 또 다른 임지로 훌쩍 떠나야 하고, 새로운 도시의 역에 내려 거리를 지나 언덕에 오른 후,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목회자 사택이 너무나 낡고 거칠었을 때 느끼는 그 공허감을 어찌 남편이 알랴. 여인은 안정된 주택에서 정성 드려 가꾸고 닦고 그곳에서 자기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이 없는 곳에서 떠나고 머물고, 또 새로운 이들과 교제해야 하는 그 유랑성(流浪性)이 아픔을 지니게 한다. 새 임지(任地)에서 남편이 힘차고 의욕적으로 설교할 때, 교우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들으며 역으로 슬픔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入城)하실 때, 수많은 군중의 환대를 만나시면서 느끼는 슬픔과 유사할지 모른다. 군중의 기대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아니라 유태인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들의 속박을 풀어주며 빵을 충족히 주는 철저히 육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바람과는 달리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백성들의 환대는 증오로 변하여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라면, 이제 새로 부임한 목회자에 대한 그들의 부푼 기대에는 얼마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일까? 오늘 ‘새 목사님은 설교를 참 잘 하신다.’ ‘심방을 잘 하신다.’ ‘사랑이 많으시다.’라고 칭찬하는 저 혀가 어느 날엔가 그들의 육적인 기대가 무너지는 날, 변하여 험한 비난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여인은 가지게 된다.
목회자는 봉급을 주고 있는 교우들의 온갖 요구를 충족시키어 주어야 한다. 저들의 영적이며 지적인 모든 것, 저들의 육적인 부족들을 채워 주고 있다고 느낄 때, 그들의 혀는 칭찬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3-4년 동안 분골쇄신 희생적으로 목회하는 동안, 단물은 다 빠지게 마련이요, 능력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설교의 예화도 반복이 될 때, 과로 탓인가 탈진한 모습을 보일 때부터 입빠른 여교우들의 험담에 의해 교회 분위기가 물들기 시작하고 어느 구석에서인가 반기(反旗)를 드는 듯 한 검은 느낌이 들 때, 목회자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만능자(萬能者)가 못됨을 아프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남편이 수많은 성도들의 갖가지 의견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면서 뚜렷한 주관이 없는 모습을 보일 때, 당회실에서 공박을 받고 의욕이 꺾인 모습으로 돌아올 때, 한밤에 깊은 잠에서 깨었을 때 아직도 잠을 들지 못한 채 뒤척이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서 울컥 목메어 오는 심한 아픔은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강단에서 열심히 설교하는 동안, 청중들은 무반응인 채 시계를 자주 보거나, 낙서를 하고 있거나, 심한 경우에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간간히 하품을 죽이는 소리가 들릴 때, 그녀는 이 모든 역겨운 곳으로부터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번쩍이는 액세서리로 장식한 어느 부유한 여신도가 모처럼 사택에 들어와 낡은 가구와 유행에 뒤진 주방용품들을 보면 하시(下視)하는 표정과 충고를 늘어놓을 때, 그리고 구제하듯 두고 가는 몇 푼의 돈닢을 보면서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오르는 분노를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을 때, 때 거리가 없이 누워있는 병든 아버지를 보며, 혹은 월셋돈이 없어 주인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찾아온 교우의 눈물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만나 병원에 입원한 교우가 치료비 걱정하는 모습에서 교회가 오직 건축하겠다는 욕심에서 그 모든 구제비를 삭감하고 있음에 아픔을 느낀다.
박봉 생활 속에서도 어느 불우한 교우를 진심으로 도와주었음에도 빚을 지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목회자의 결함을 핑계를 대면서 어느 날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아픔으로 시달린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자기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큰 교회의 목회자가 얼마나 대단한 설교가인지, 교회가 날로 성장하고 있으며, 기관마다 힘차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장황히 늘어놓는 모습 뿐 아니라, 여기 작은 교회도 속히 부흥되려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충고까지 아끼지 않을 때에 남편의 그 쓸쓸한 표정을 보며 또한 슬픔을 느낀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에 온 교우가 큰 잔치를 벌인 후, 제 멋대로 설거지를 해 버리고 가버린 순간에 난장판이 된 사택을 피곤에 절어 정리를 해야 할 때, 그 잔치에 참석치 못했던 어느 교우가 교회가 너무 부(富)한 자의 편에만 서고 빈(貧)한 자를 경시하는 양 불평하는 말이 들리어 올 때, 빈 쌀통도 아랑곳없이 밀어 닥치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할 때, 농촌 목회자와 개척 교회의 목회자의 아내는 울 수조차 없는 상처를 마음에 심게 된다. 이제 목회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노년이 되었을 때, 사랑을 다해 키운 중견 지도자의 입에서 자주 목사님이 어서 은퇴 하시고 젊은 목회자를 모셔야 교회가 부흥된다는 지론(持論)을 펼 때 그때에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라기보다 절망감이라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늙은 남편은 교회를 사임하고 새 목회자를 청빙할 때, 떠나는 목회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새 목회자를 맞이하기 위해 온 교회가 잔치 기운에 들떠 있을 때, 그리고 어느 날엔가 한두 번 드나들던 교우들마저 발길이 끊길 때 슬픔은 쌓여간다. 그리고 모처럼 방문하는 교우의 입에서조차 새 목회자에 대한 칭찬만으로 화제를 삼을 뿐 노부부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말투로 건강이나 사는 삶을 묻고 끝내는 배은(背恩)의 모습을 만날 때, 목회자의 아픔은 극에 달한다. 영국 브릭스햄(Brixham)에서 목회한 헨리 라이트(H. F. Lyte 1793-1847) 목사는 54세의 병약한 몸으로 25년 동안 목회하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 때에 찬송시를 지었는데 그 시가 모든 목회자의 가슴을 적시게 한다.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주여 나와 함께 계십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내 도움 되신 주여 계십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함이 없는 주여 계십소서.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 줍소서.
주 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밤과 낮에 주여 늘 계십소서.
2. 기쁘게 하는 것들
때로 여자의 기쁨은 조그마한 데서 생기어질 때가 많다. 한 송이의 백합꽃에서, 남편의 따뜻한 한 마디의 위로에서, 집배원이 던지고 간 작은 엽서에서 잊었던 소녀시절의 우정을 읽을 때, 묘하게 큰 기쁨과 생의 의욕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어느 여신도가 이제 외도(外道)가 잦은 남편과 더 이상 살 수 없어 헤어지고 싶다는 극도의 상한 심정을 안고 방문했다가 두어 시간의 상담 끝에 결국 눈물을 흘리며 가정으로 돌아갈 때 목회자 부인은 보람을 느낀다.
모든 것을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의논하는 교우들의 그 순진한 고백을 만날 때, 한 가난한 성도가 분에 넘치는 식료품을 부엌 한 구석에 수줍게 놓고 간 것을 보고 그것을 붙들고 간절히 축복을 빌어 줄 때, 많은 교우로부터 큰 오해를 받아 고독과 절망의 계곡에서 헤맬 때, 평소에 말없이 봉사하고 기도로 깊은 신앙을 키워온 어느 교우가 조용히 방문하여 위로의 말을 들려줄 때 목회자 아내는 기쁨을 만나게 된다. 토요일 내내 설교 작성으로 전전긍긍하던 남편이 밤늦게야 설교를 작성한 후, 주일(主日) 아침 강단에 섰을 때, 얼마나 조바심치며 기도했던가?
그러나 그의 무거운 입이 열리기 시작하고 오묘하고 깊으며 뜨거운 말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여기저기에서 흐느낌이 들리어지고 강한 성령의 기운이 온 예배를 가득 채우고, 그리하여 하늘의 노래가 울리어 퍼질 때, 그 기쁨은 하늘에 사무치고 그의 발이라도 씻기어 드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된다. 어느 주일날 예배 시 문득 돌아본 회중석에서 평소에 주벽(酒癖)으로 늘 고통을 주던, 어느 여교우의 남편이 발견되고, 그가 열심히 말씀에 도취되어 있는 장면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랴.
목회의 초년(初年) 시절, 아빠가 설교를 할 때, 교회당을 들락거리며 쿵덕거리던 아들 녀석이 자라나서 신학교에 입학함으로 그 엄숙한 입학식에 참석했을 때, 딸아이가 아빠가 인도하는 예배를 위해 오르간석(席)에서 성숙된 여인의 모습으로 앉아 반주할 때, 아들이 깊은 지혜와 신앙으로 다지어진 정숙한 모습의 며느릿감을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킬 때, 그 동안에 목회의 상처들은 씻기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어느 가을날,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고 여행의 동반자(同伴者)가 되었을 때 단풍으로 채색된 숲을 지나면서 남편이 “여보, 당신과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의 목회는 모두가 실패 했을 거야. 당신의 그 희생적인 기도, 그 묵묵히 뒤에서 격려하고 도와준 덕에 지금의 나는 존재하는 것이요.”라는 위로의 말을 들리어 줄때, 마치 신혼(新婚) 초의 시절로 돌아간 수줍음이 일며 홍조를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 눈물로 기도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임택진 목사는 목회자가 나무라면 부인을 뿌리라고 표현했다면, 목회자 부인들이여, 당신들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그를 통해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라. 그와 함께 떠나고 머물고 노래하고, 노숙하라. 그때 하늘의 위로가 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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