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빠 미소’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이다. 연아가 점프를 할 때마다 함께 뛰었고, 멋진 착지를 선보일 때는 주먹을 꼭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자기가 현역 시절 이루지 못했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첫 제자 김연아를 통해 이뤄내는 순간에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김연아를 가르치는 게 자랑스럽다. 밴쿠버에 도착할 때부터 금메달을 예감했었다.”라는 말도 했다.

우리 국민에게 크나큰 감동과 환희를 불러다 준 외국인 지도자, 따지고 보면 꽤 많은데,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은 히딩크 그리고 오서 정도인 것 같다. 오서 이야기 좀 더 해보겠다. 오서는 ‘미스터 트리플 액셀러레이터’로 불리며 최고의 명성을 떨쳤지만 1984 사라예보,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을 김연아를 통해 이뤄낸 것이다.

아까 ‘아빠 미소’라고 했는데 김연아 선수에겐 아버지뻘이다. 1961년생이다. 같은 나이의 유명인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있다. 오서의 살아온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오서는 소년 시절 아이스하키를 하다 피겨로 전환해 캐나다선수권을 8번, 세계선수권을 1번 차지했다. 1979년 주니어 선수 중에선 세계 최초로, 시니어를 포함하면 세계 두 번째로 트리플 액셀러레이터를 성공시켜, ‘미스터 트리플 액셀러레이터’이란 별명을 얻었다. 2009년엔 세계피겨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영웅에게는 항상 뼈아픈 패배의 기록이 있기 마련인데, 오서도 있었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겨울올림픽때 트리플 플립에서 실수를 하면서 0.1점 차로 패배해 은메달에 그쳤다. 그 뒤로 오서에게 트리플 플립은 늘 악몽처럼 따라다녔다. 1984년 사라예보 겨울올림픽에서도 아쉽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오서는 선수가 지는 부담감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인지 오서는 김연아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겁먹지 마. 너는 더 잘하잖아. 평소대로만 하면 더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어”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런 격려 뒤에 김연아는 78.50점의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그 미소에서 느끼는 긍정의 힘,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서의 미소를 빗대 ‘미륵 오서’라고도 한다. 많은 언론들은 “오서 코치가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지도자로 기억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했다. 히딩크 이야기도 해보자.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 4강 신화를 달성한 주인공이다. 오서와 히딩크의 결정적인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선수에 대한 무궁한 신뢰이다.

요즘엔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지도자가 완전히 안착한 듯 한 느낌이다. 국가대표팀 뿐 아니라 요즘 프로축구 프로야구에서도 벽안의 지도자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포항 스틸러스가 작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지도자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역대 외국인 감독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당분간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화무쌍한 용병술과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앞세워 스타급 선수가 거의 없는 포항 축구를 완벽하게 살려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보면, 거스 히딩크 뒤로 움베르트 쿠엘류,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이 차례로 대표팀을 이끌어다. 하지만 히딩크의 업적에 가려져 그 뒤에 아무리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표가 안 났고, 그래서 결국 실패로 규정됐다. 패장에겐 말이 없다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에다 남긴 충고의 한마디는 새겨들을 만하다. “과정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시하는 것,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지적이다.

최근의 육상 지도자 한 명도 이런 이유로 물러났다. 세계 단거리 계를 주름잡은 아사파 파월과 타이슨 게이를 가르친 사람이지? 육상강국 자메이카에서 온 리오 알만도 브라운 씨인데. 7개월 만에 물러났다. “한국 선수들은 기록 경신에 도전하지 않아도 전국체전에서 괜찮은 등수에만 들면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세계와 경쟁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어지간하면 밥벌이가 해결된 선수들에게 기록은 거추장스러운 것일 수 있다.

또 하나 단일민족 그리고 순혈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폐쇄성도 문제 아닐까 한다. 약 2300년 전의 중국은 일곱 개의 큰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국시대였지만 능력 있는 인재들은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며 요직을 차지했다. 이 인재들을 일컬어 손님 ‘객’자에 벼슬 ‘경’자를 써서 객경(客卿)이라고 했다. 그중 최강국이던 진(秦)의 귀족들은 객경들이 출신국의 이익을 위해 진의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며 객경 추방 론을 폈다. 이에 맞선 이사(李斯)가 해납백천(海納百川)의 논리로 반박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거부하지 않아 커졌고, 강과 바다는 잔물결을 가리지 않아 깊어졌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진나라가 있던 때가 아니고 더구나 글로벌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