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설 연휴를 잊은 채 5일 내내 PC방에서 게임을 했던 32살 손 모 씨가 숨졌다. 그 다음 날이었다. “인터넷 게임 좀 그만하라”고 자주 꾸중하는 어머니를 22살 먹은 아들 오 모 씨가 살해했다. 어린이 청소년도 아니고 성인들이 이랬다. 이 쯤 되면 ‘살인적인 게임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딸을 방치해 굶겨 죽인 비정한 부부가 붙잡혔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렇게 딸이 굶기는 새, 이 부부는 온라인상에서 소녀를 양육하는 내용을 담은 롤플레잉게임을 했다고 한다. 현실의 딸은 굶어죽이고 사이버상의 딸을 키웠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부분은 아이템 숍을 통해 사이버 상의 딸에게 옷과 장신구를 사주거나 블로그에 육아일기까지 썼다고 한다.

누리꾼들은 '저러고도 엄마, 아빠라고 얼굴을 들고 다녔냐'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게임계정 이용시간을 제한하자'라는 비난의 글을 쏟아냈다. 혹시 이 부부들, 돈을 만져서는 안 되는, 그래서 정신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에 빠지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게임중독은 젖먹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할 만큼 무서운 질병이란 것이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군.

게임중독과 도박중독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아니 도박중독보다 더 위험한 게 게임중독이다. 게임의 경우 어느 단계에 이르면 ‘고수’ 지위를 얻게 되고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자극적 화면은 지루한 일상을 잊게 하고 해방감마저 안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게임을 탐닉하다 보면 급기야는 현실감각이 사라지고 가상세계에 살아야 더 평화롭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9살 이상 청소년의 2.3%, 약 17만 명이 약물치료가 필요할 만큼 고위험군 인터넷 중독자라고 밝혔다.

게다가 인터넷 중독은 객관적으로 중독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이게 치료의 첫 단계부터 어그러진다고 한다. 지난 해, 영국에선 도박과 알코올중독 전담 의료시설에 온라인게임 중독 치료코스가 신설됐다. 비디오를 통한 치료를 비롯해 12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곳 책임자는 "게임 중독자들이 무조건 접속하지 못하게 해선 소용없다.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스스로 게임중독이라고 선뜻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까 도박중독과 비교했는데,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은 작년 말 게임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자와 비슷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중국은 하루 3시간 이상 게임하면 그치게 하는 이른바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의 여가를 정부 당국이 통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비난이 거세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게임 인구만 4600만 명. 사회 구조적인 관리가 꼭 필요한 현실이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게임 셧다운제’이다. 이건 3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 점수나 레벨이 반 토막 나고, 5시간 이상 하면 몽땅 날아간다. 게임이 사람의 건전한 이성까지 지배하게 된다면, 중국의 이런 조치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이게 개인의 영역으로 그치는 것이면 좋을 텐데, 남을 해치는 충동까지 자아낸다고 한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가 전국 24개 초등학교 4∼6학년 2000명을 조사한 결과가 충격적이다. 초등생들이 즐기는 게임 상위 20위 안에 14개가 상대를 주먹이나 흉기, 총기로 죽이는 내용이라고 한다. 또래를 익히고, 상대를 배려하는 가치를 배워야 할 나이에 사람을 해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훈련을 받는 셈이다. 조승희 사건이나 2005년 최전방 GP 총기난사사건도 결국 이런 살상게임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으로 게임이 심약한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멀쩡한 성인의 이성도 파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거 방치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