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80년간의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 저자는 뉴욕의 어느 책 판매인이 집으로 가는 길에 가판대 상인에게 가장 잘 팔리는 책, 즉 베스트셀러가 뭐냐고 물은 이후 보편적인 명칭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최초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1895년 창간된 문학잡지 ‘북맨’에 실렸다. 대도시 16개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6권을 뽑아 매달 ‘6권의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국내에선 1950년대 중반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7만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회자됐지만 공식적인 베스트셀러 집계는 교보문고가 문을 연 1980년대 이후부터다.

히트치는 책이 되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고 들었다. 출판계에 밀리언셀러는 '하늘이 낸다'는 우스개가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3T'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말이 통용된다. 제목(Title)에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시대 흐름(Trend)을 타는 내용이어야 하며，출판 시점(Timing)도 사회 이슈와 부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담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뭔지 아시나? 힌트를 드린다. 3000만 부가 팔렸다. 정답은 크라운출판사의 <운전면허 학과시험문제>이다.

‘블랙 베스트셀러’라는 말 들어봤나? 사재기를 통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부정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국고보조금으로 운영하는 단체인 출판물 불법신고유통센터 운영위원회가 얼마전 네 개 종류의 책을 사재기 혐의로 문화관광부에 신고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들이 자기들이 낸 책을 대량으로 구매했다는 것이다.

사재기하면 단 번에 표가 날 텐데,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부정행위를 했다는 것일까. 온라인 서점의 매출이 전체 도서 시장의 1/4이다. 약 1조원으로 추정인데. 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서점에서의 매출은 곧 흥행이 됐는지 안 됐는지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척도가 됐다. 수법은 이래다. 온라인서점에서 한 사람이 반복 주문하거나, 다른 이용자의 아이디로 같은 책을 같은 주소로 여러 권 구매하고, 한 사람이 같은 책을 여러 서점에서 주문하는 방식이다.

요즘엔 인터넷 독서클럽의 회원들을 이용한 사재기는 물론 전문 대행업체까지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값에 버금가는 경품을 내건 특정 출판사 재테크 관련 책을 산골마을에서 수 십 권 구매하는 유령독자까지 생겼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출판사 직원이 대형 서점을 돌며 특정 책을 무더기로 사게 하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제 얘기를 좀 해보겠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사장이 자서전을 냈는데, 제가 있던 부서의 장이 직원을 동원해서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오도록 지시했다. 방법도 알려줬다. 한 명이 시간 간격을 두고 상,하권 두 권 가운데 상권만 산다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저는 거부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만 뒀다.

이런 식으로 사재기해서 베스트셀러에 올릴 수 있다.지난해 3월부터 올 2월 사이에 온라인서점인 예스24, 인터파크의 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이다. 고발된 책은 '마법의 돈관리', '정성', '아버지의 눈물', '네 개의 통장' 이렇게 4개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3월 베스트 셀러 1위이다. 출판사들은 어떤 반응일까. “그런 일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출판계의 고질적 병폐인 사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며 어제 오늘 일도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재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기계에 기름칠을 하듯, 판매에 탄력을 붙게 하려는 의도이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야만 계속,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출판사로서는 광고비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판매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쉽게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사재기에 의한 베스트셀러 조작은 명백한 사기행위다. 출판시장에서 좋은 책이 설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출판산업에는 물론 국민 독서문화에도 해악을 끼친다. 그래서 정부가 대책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정부가 사재기가 적발된 출판사의 모든 책을 3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빼도록 했다.

그러나 감시와 단속만으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많다. 사재기를 부채질하는 몇몇 대형 서점이 선정한 베스트셀러 순위가 과연 좋은 책의 척도인지 독자들 역시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영예가 온전히 작품의 힘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웬만한 독자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마케팅이란 ‘마법의 손’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흙 속에 묻힌 진주일 뿐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이 책이라고 해서 비껴갈 리 없다. 결국 많이 팔리는 책보다는 많은 이에게 읽힌 책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각 도서관에서 빌려간 책의 순위가 집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 역시 맹점은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