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신문 '크리스천인사이트' 기고문)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2월 초, 서울 4개 노선, 8대 버스에다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달아 광고했다. <국민일보>는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현실로 나타난 안티기독교의 위협’이라고 해석했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기독교계의 압력이 거셌나보다. 수많은 목사, 신도들이 항의 전화를 걸어댐 때문인지,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이 광고를 내린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경우 이 광고 내용에 대해‘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제소’를 공언했다는 점이다. 명예훼손 소송은 본인의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제소는 예수님 또는 예수님의 유족이 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아니면 한기총 자신이 한다는 것인데 그럴 경우 과연 한기총이 예수를 대리할 자격이 있다는 얘기인지 의문이다. 어쨌든 이 사안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나는 누구의 말이건 이 광고 문구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도 그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그 의지에 따라 선택했던 행동에 대해 심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거창한 조직신학적 풀이까지 갈 필요가 없다. 사실이 그렇잖나. 약자를 짓밟고 부정과 비리를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이명박 장로가 심판받지 않는다면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물론 그렇다고 안티 기독교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한국교회 주류들의 대응방식에는 털끝만큼도 동의할 수 없다. 대중이 그 광고를 보면, 있던 신앙도 사라진다는 발상인데, 이는 지도층은 현명하고 대중은 아둔하다는 낡아빠진 교조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며, ‘교회는 아직도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세속은 이런 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구태에 쩐 엘리트 의식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힘 자랑 그렇게 하고 싶나

선배 세대는 교회를 세습하고, 불륜 저지르고, 회계 상 비리를 밥 먹듯 하면서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친북좌파의 흠집 내기라고 떠들고, 후배 세대는 강남 노른자 땅에 2100억짜리 건물을 짓고도 ‘미션센터’ 운운하고. 후안무치 경연대회라도 연 한국교회인가.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 중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결신할 뜻을 가질까? 사람 말고 주님 보고 교회 다니라고? 열매들이 하나같이 저 지경인데 과연 그 말에 설득력이 있겠나?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번 버스 광고 파문, 평소 ‘힘 자랑’ 좀 하고 싶었던 한국교회에 좋은 구실이 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간의 흐름을 보면 ‘어디서 감히 기독교의 힘을 무시해?’ 이런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인들 전화에 버스조합이 백기를 든 것이 알려지는 것. 사실 이건 선교 전략적으로나 본질적인 내용으로 보나 결코 기독교에게 이롭지 않다. 그러나 <국민일보>는 승전보처럼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주간 <미디어오늘>에는 ‘극동방송 직원들의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 응원 게시물 쓰기’ 사건이 보도됐다. 극동방송 직원들 상당수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다 설 연휴 전날 방송된 대담 프로그램을 듣고 “잘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철학에 깊은 공감을 얻게 됐다”는 식의 아부성 글을 남긴 것이다. 본인들은 ‘자발성’을 강조하는 모양이다. 누구의 지시도 없이 일방적 정치 홍보성 인터뷰에 감동 받아 낯 뜨거운 찬양 글을 남의 사이트에 가서 한다? 그 내부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필자로선 그저 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어찌됐든 살아있는 권력과의 유대감에 강한 자존감을 느끼는 김장환 이사장이 좋아할만한 행동이다. 자신이 실질적 사주인 방송이 자네에게 큰 덕을 끼치고 있다고 권력자에게 큰 소리 한 번 칠 수 있는 구실이 되니 말이다. 이것 또한 ‘힘 자랑’의 다름 아니다. 극동방송에 재직할 당시, 김장환 이시장이, 듣고 싶지도 않은 대통령과의 통화, 정당 대표와의 면담, 검찰총장과의 식사 등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던 그때의 상황이 실루엣처럼 반추된다.

‘로마서 13장’ 체제

이게 어제 오늘, 몇몇 사람의 행태만은 아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소위 주류 행세하는 이들은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권세를 가진 위정자’를 ‘신의 일꾼’으로 표현하며 이들에게 복종할 것을 강조했다. 이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자신들이 실천했던 것이기도 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연임만 가능했던 대통령 자리를 세 번 하겠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개헌을 획책하자 조용기, 김준곤 등 보수 성향의 목사들은 “기독교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그 영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며 옹호했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넘어 종신 집권을 획책할 때에도, 국내외 진보적 기독교 인사들이 시국 사건으로 붙잡혀 들어가고 추방당할 때에도 ‘정권이 하는 일이라면 뭔들 반대 하겠냐’며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권력이 바뀌어도 그 폐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광주 학살자 전두환 장군을 호텔에 불러다 축복 기도를 해주는가 하면, 그의 임기 내내 골칫거리였던 민주화 운동에 대해 폄하와 색깔론 제기로 방어해줬다. 한국교회 주류가 한 일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일관성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 ‘순종해야 할 권력자’를 향한 그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특히 참여정부 때엔, 주한미군 철수반대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운동, (구)사학법 개정 반대 움직임에다, (개정)사학법 재개정 캠페인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열기까지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다.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해줄 여지가 없어 보여 그랬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이 더욱 강해지는 이유는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이명박 장로가 권좌에 오르자 주저함 없이 ‘로마서 13장’ 체제로 복귀한 점에 있다.

최근에는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일부 ‘교계 원로’들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국민투표 주장을 제기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국민투표론은 강경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암묵적 지지를 넘어서 노골적인 'MB서포터스‘를 자임하고 나선 꼴이다.

조용기 목사의 처남인 김성광 목사는 더 나가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설교석상에서 험담해 파문을 낳았다. 이 모양 이 수준이다.

한국교회여, 힘을 경계하라

가톨릭교회는 신자는 물론 비신자에게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세속권력과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지킨 덕이다. 현재는 다소 보수화돼 가고 있다는 평도 있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독재 정권기에 끊임없이 권력과 맞섰고 데모하던 학생들을 감싸 안아줬다. 종교권력을 건드리는 것은 아무리 흉포한 군사정권도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천주교는, 이런 부담을 선용해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한 단계 진전시킨 역할을 담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양지만을 좇는 개신교회의 행태와 참 대비된다.

일례로 스스로를 ‘한국교회 차세대 주자’라고 명명하는, 한 덜떨어진 목사의 설교 내용을 소개한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부터 장충단공원, 평화상가 그 너머까지 우리가 길을 메워야 한다. 불교에서도 20만 이상 모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100만 이상 모야 한다. 교회에 대해 사회가 주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세 과시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낸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리 문장 전후맥락을 살펴봐도 세 과시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싶다. 내용적 성숙은 외면한 채, ‘우리 기독교가 이렇게 힘이 있다’라는 자긍심 또는 과시욕만 앞세워서 도대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준다는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가 탄압받을 때에 더 진전된 수치적 성장이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시대 250년 동안 300만 명의 기독교인이 학살당했지만 금기시 됐던 기독교는 더욱 넓고 빠르게 교세를 넓혀가 콘스탄틴 대제 대에 이르러 공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가 됐다는 것이다. 통제 일변도의 종교정책을 구사하는 중국에서도 13억 전체 인구 가운데 1%가 넘는 1600만 명이 신자가 됐고, 그 수는 더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삼위일체론’을 제기한 신학자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했다. 반면 ‘힘 자랑’하는 기독교가 번성한 사례는 한국을 포함해 거의 없다. 서서히 줄어드는 한국교회. 성찰하는 바가 없다.

한국교회가 망하고 싶지 않다면 ‘힘’을 경계해야 옳다. 세속 권력과 천민 자본력이라는 힘에 대해 일말의 문제의식은커녕, 도리어 결탁해 가는 한국교회를 향해 상식 있는 대중은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외면한다면, 익명화됐다는 상당수 현대 그리스도인이 어느 순간 무명화 돼 신자 수, 봉헌 액수, 교회의 자산 등 물질적 기반에 크게 의존하고 가치를 뒀던 교회는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힘 자랑’하다 순식간에 힘을 잃고 존재감을 잃어버린 삼손의 이야기, 성경 속에 박제화된 일화일 뿐이려나.

/본지 편집장,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