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 세기에 걸친 미국 진보 진영의 숙원인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현한 영웅이 됐다. 역사가들은 이번 의료보험 개혁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며 높은 평가점수를 주고 있다.

미국 의료보험 개혁 100년 역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공약했다가 낙선한 이후, 패배의 연속이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면서 전국민 의료보험을 포함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국 의학협회의 반대가 심하니까 사회보장제도 전체가 사라지는 비극으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의료보험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에도 해리 트루먼, 존 에프 케네디, 지미 카터, 빌 클린턴 같은 1940년부터 90년대까지 주로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의료보험 개혁은 대통령직은 물론 목숨까지도 내걸어야 했을 만큼 비장한 문제였다. 앞서 언급한 대통령들, 대부분 재선 실패, 암살, 중간선거 참패, 탄핵 같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달성한 것이다. 의료개혁안 내용부터 볼까? 한마디로 말해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이다. 물론 모두 다 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 5400만 명인 무보험자 가운데 3200만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개혁안은 수혜 대상이 저소득층에 집중돼 있다. 대신 보험료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중산층의 반발이 우려된다. 보험료를 내는 중산층도 혜택을 받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애초 공공의료보험으로 민간보험사와 경쟁을 벌여 보험료를 낮추겠다는 복안이 있었다. 하지만 보수파의 거센 공격과 보험업계의 로비로 무산됐다. 이로써 중산층 이상은 세금을 더 내고, 오른 보험료를 내야 하고, 실업난까지 감당해야 한다. 노조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이다. 5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에게 직원들의 의료보험 비용 부담을 안겼는데, 이때문에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노조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오바마의 앞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11월 중간선거가 있다. 여기서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미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밑돌고, ‘티파티’라는 보수층 시민운동까지 나와 국론은 첨예하게 분열됐다. 현재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지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히 훼손될 뿐 아니라, 2012년 재선 가도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그렇다면 미국의 의료제도가 어떻게 돼 있기에 이렇게 민주당 집권 때마다 손보려 했는지 살펴볼자. 몇 년 전 한국에서도 개봉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는 미국 의료보장 체제의 치부를 도발적으로, 생생하게 고발했다. 참고로 ‘식코’는 환자를 뜻하는 속어이다. 영화에는 골수암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나온다. 남편은 운 좋게 골수 기증자를 찾아냈지만 보험회사는 수술비 지급을 거절했다. 수술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남편은 3주 만에 숨졌다. 보험회사는 수술에 따른 위험과 고통보다 3주간의 안전한 생을 권한 것이다. 식코에는 21살 때 자궁경부암에 걸린 여성도 나온다. 이 여성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했는데 이유는 “젊은 여성은 자궁암에 걸릴 수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 2개가 절단된 ‘민간의료보험 미가입’ 남자에게 병원 측이 비싼 봉합 수술비용로 중지는 6만달러, 약지는 1만2000달러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 비싼 민영보험의 천국이란 점 때문이다.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압박을 받으면서 민영보험의 비중을 높여갔다. 오늘날 미국은 서방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공적 의료보장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다. 그 결과 미국의 의료보험은 사보험이 기본이며 당연히 보험료가 매우 비싸다. 부부 한 쌍에게 월 500달러 즉 50만 원 정도는 약과다. 게다가 의료비는 국민소득의 16%로 세계 최고다. 유럽에서 높은 프랑스·스웨덴도 11%, 영국이나 한국도 6~7% 선이다. 그러니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안 가는 게 상책이다.

누가 이런 미국을 꿈의 대륙이라고 했을까? 최근 영리 의료법인을 논의하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판타스틱”이라고 했다더라. 이 좋은 걸 고칠 이유가 없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영국，프랑스는 국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공보험에 가입하고 공보험으로 부족한 본인부담 의료비만을 민영보험이 보완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만들어 30년간 훌륭하게 다듬으면서 운영해 왔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처럼 건강보험제도가 후퇴한다던지 하는 일이 발생하면 큰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어제 통과를 보면서 오바마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화당은 이 법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매도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그렇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단임으로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법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반대의원을 대통령 전용기로 불러 설득했고, 반대여론의 진원지인 <폭스뉴스>의 진행자와 맞짱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골수 공화당 지지성향 시청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였는데,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였다.

야당 의원과의 대화도 격의 없이 했다고 한다. 공화당 지도부 40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7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였다. 하원의 본격논의가 시작되고는 오바마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해 설득한 의원은 92명이나 됐다. 이런 노력이 사그라져 가던 의보개혁안을 되살려냈다. 힘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제도의 틀 내에서 대화와 설득을 통해 현실의 벽을 넘는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은 소통과 대화 정치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