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하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봄이 아주 더디 오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제 곧 4월인데도, 산수유 꽃망울이 터질듯 봄이 완연해 지는가 하면 다시 눈발이 날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젠 추위가 다 물러 갔으려니 하는데 아직도 기도원 산자락에 찬바람이 서성이고 응달진 계곡에는 겨울 같은 서릿발이 남아서 돋아나는 새싹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국 4대 미인(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이었지만 비운의 여인이었던 왕소군을 두고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에서 노래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는 싯구를 인용하여 봄이지만 봄같지 않은 봄 날씨를 탓합니다. 그래서 영국 시인 엘리옷은 장편 서사시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노래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물러가는 겨울이 못내 아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늦장을 부리는 겨울이 못마땅하고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절대로 겨울이 봄을 막을 수 없고 꽃샘추위가 피는 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심술부리는 겨울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미 농부들은 뿌릴 씨앗을 고르고, 봄 맞을 차비를 하고, 숨죽인 새싹들은 화려하게 피울 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겨울이 심술을 부려도 다가오는 새봄을 막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고, 어둠이 지나야 아침이 오고, 고난의 언덕을 넘어 죽음의 터널을 통과한 뒤에 부활을 맞도록 세상을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신비는 죽음에서 풍성해 지고 썩어야 배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종려주일입니다. 경건과 절제로 자신을 세워 온 사람들이, 조용히 고난의 터널을 묵묵히 걸어온 인고를 아는 사람들이 생명의 찬란한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는 종려주일입니다. 죽음이 득실거리고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행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의 인간구원의 가시적인 역사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은 그냥 예수님일 뿐 그리스도도, 메시야도, 더욱 우리의 주님도 아니셨습니다. 나사렛에서 올라온 자연인인 예수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서야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메시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움을 통과하고서야, 무덤을 깬 생명의 승리를 선언하시고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르고서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철저히 버림받고 음부(陰府)까지 낮아지신 후에야 생명의 주가 되셔서 죄의 사슬에 묶여 죽음의 공포에 눌린 인간을 자유하게 하셨고 풍성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입성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군중들의 환호와 호산나 찬양 가운데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죽음의 십자가 위에서 죄에 대한 의의 승리를 선포하시고 적막한 무덤에서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꽃샘추위에 기죽지 않고 고난의 언덕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물러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문제와 아픔 가운데서도 찬란한 내일을 바라고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꽃샘추위가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고, 죽음의 골고다가 새 생명의 역사를 방해하지 못하듯이, 굳게 닫힌 돌무덤이 주님의 부활을 막지 못하고, 사망의 권세가 생명의 능력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를 향한 생명의 역사, 축복의 새봄을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고(롬 8:28)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어떤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음(롬 8:39)을 믿으며 부활을 맞이하기 위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합시다. 아직도 이 구석 저 구석 똬리를 틀고 있는 불행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죄와 질고를 벗어버리고 부활의 새아침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