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 도서관에서 여대생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의 글과 한 여대생의 특정 부위를 촬영한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게시물을 등록한 남학생은 “자신이 여학생을 성추행했다. '인증샷' 넉 장을 올리겠다”라고 하더니 여대생의 다리 부분을 몰래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이다.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니까 이 남학생은 기세등등해서 "속옷 찍은 것 외엔 다 올려주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건 사회 통념을 따져볼 여지없이 잘라 말해 범죄이다. 그래서 상황을 전달받은 그 대학 총여학생회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러자 이 학생은 사진을 삭제하고 그 게시판과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 글을 올렸다. 그런데 범행 동기가 기막히다. "최근 학업스트레스와 힘든 일이 많아서 잘못을 저질렀다. 사진을 올린 것이 범죄란 자각을 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용서를 구했다. 철딱서니가 없다고 봐야할 지경이다. 이 학생은 결국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여학생을 성추행 한 사실이 없었다고 한다. 인증된 것은 ‘거짓말’ 뿐이었다.

며칠 전에는 천안함 구조작업을 진행하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빈소에서 정치인 몇 사람이 인증 샷을 찍어 올렸다가 비난을 샀다. 고인을 욕되게 한 경망스런 처사라는 비난까지 샀다. 정치인들이 조문하는 것도 그 의도가 흔쾌하지 않은데 게다가 가서 인증 샷까지 남기려 한 것은 진정성이 결여된 문상이었음을 스스로 만방에 알린 경우가 됐다.

‘인증 샷’은 실제로 자신이 했다는 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증명하는 사진이라 하겠다. 요즘에 이런 문화가 확산된 배경은 인터넷 또 디지털 카메라 보급 때문이다. 과거에는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는 게 거의 유일한 사진 기록이었지? 하지만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촬영 횟수가 제한되다보니 인증 샷도 아주 필요한 경우 외에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정 촬영이 가능하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무한대로 올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증 샷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인증 샷이 보편화되고 있다. 지난 설에 강원도 속초에 쉬러 갔다 왔는데, 그때 폭설이 내렸다. 눈으로 덮인 울산바위는 그야말로 장관 그 자체였다. 이걸 저는 갖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마이크로블로그인 트위터에다 올렸다. ‘지금 이 시각 울산바위’ 이런 제목으로 말이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무선 인터넷망이 만들어낸 문화이다. 과거엔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서울로 돌아가 사진관에 맡겨 사진으로 얻어오고, 그걸 스캐닝해서 파일로 만들고는, 인터넷에 접속한 뒤, 올리는 과정을 거친다. 얼마나 복잡한가. 시간과 돈도 엄청 깨지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몇 번의 버튼으로 순식간에 현장의 그림을 세상에 보낼 수 있다. 이러다보니, 뭐 먹었는지, 뭐 입었는지, 뭐 샀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바로바로 담을 수 있다. ‘인증 샷’은 순기능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친밀한 소통의 방편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인 진보만으로는 ‘인증 샷’이 확산되는 현상을 완전히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 앞서 내가 나열한 ‘인증 샷’의 예는 일차원적인 것이다. 인터넷은, 많이 실명화 됐다지만, 아직도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다보니 내가 지금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가 석학인지 초등학생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와중에 소통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상대의 진정성을 평가 절하한다. 그러면, “좋아. 나 인증 샷 보낸다”이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불신이 가열되는 풍조의 한 단면이란 얘기이다.

소설가 이외수 씨 이야기를 이쯤에서 짚지 않을 수 없다. 이외수 씨는 필명이 아닌 실명을 쓰는데도,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탓에 누리꾼들이 진짜 이외수 씨인데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외수 씨는 자신과 관련한 누리꾼들의 의견이 올라와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릴 때 이른바 ‘인증 샷’을 첨부한다. ‘이외수 맞냐’ ‘증명해 봐라’는 누리꾼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개인생활이 담긴 사진을 같이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인증 샷이야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런 와중에 일부 오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인증 샷으로 과시욕을 나타낸다. 인터넷 시대에는 자연인이 따로 없다. 모두가 다 공인인 셈이다. 이러다보니 대중의 시선에 민감하게 되고, 나아가 이런 시선을 즐기게 된다. 인터넷에 미니홈피가 인기를 얻고, 인터넷방송이 활성화돼 가는 현실이 이걸 설명해준다. 얼짱이 등장하고, 인기 BJ가 등장하고, 그런데 과유불급이다. 인터넷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는 ‘용자’라는 표현이 있다. ‘용감한 사람’이란 뜻이지? 이런 표현을 들으려고 주목받는 일을 하는 경우이다. 이번 여학생 성추행 인증 샷 사건이 오도된 사례라 하겠다.

이러다보니 폐해는 클 수밖에 없다. 자기 과시를 하려다 보면 가끔 상대가 엉뚱하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상대의 사생활이 침해하게 된다. 따라서 권리만을 행사하는 공인 문화만이 아닌, 의무도 따를 줄 아는 공인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성찰,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긴요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