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교계가 주목한 판결이 있었다. “강제적인 학교 예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른바 ‘채플’을 거부했다가 다니던 고등학교로부터 퇴학 조치를 당한 강의석 씨 사건, 많이들 기억하실 거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강의석 씨의 손을 들어줬다.

종교가 없던 강의석 씨는 강제 배정을 통해 기독교 학교인 대광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는 전통에 따라 매일 아침 찬송과 기도를 했다. 또한 매주 수요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다.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 수업도 듣도록 했다. 매년 3박 4일 동안 기도와 성경 읽기를 하는 생활관 교육도 받게끔 했다. 1학년 말에 강의석 씨가 부회장에 출마하려고 하자 ‘교회를 1년 이상 다녀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웠다. 강의석 씨는 “종교의 자유를 요구한다”며 1인 시위를 하다 고3때이던 2004년 퇴학 당했고 이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최근엔 또 이런 학교 이야기가 있어서 화제였다. 안양에 있는 기독교 사립 고등학교인데. 일주일에 한차례씩 전교생을 인근 교회로 등교시켜 예배를 하게 한다. 그 자리에서 찬송과 기도를 하는 식으로 예배 형태의 1교시 수업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업 마지막에는 학생회장이 대표로 나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로 시작되는 내용의 '나의 다짐'이란 선언문을 낭독하고, 1학년을 대상으로 '기독교 세계관'이란 수업시간을 편성해 신앙 교육을 하며 1년에 네 차례 '신앙 논술' 시험도 치른다는 것이다. 특히 교내 개신교 동아리 소속 학생들에게만 '봉사활동'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학교가 특정 종교 교육을 하더라도 듣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대체 과목을 듣게 하거나 종교 수업 참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헌법상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 판결이 모든 학교 현장에서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학생의 동의를 구해야만 학교 안에서의 종교 행사 또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같은 기독교 연합기관과 기독사학자들은 일제히 유감의 뜻을 밝혔다. “기독교 사학들이 기존의 교육실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건학 정신에 입각해 최소한의 종교 활동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방적인 종교 강요로 간주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채플 등을 원치 않을 경우 인격 수양을 위한 윤리 도덕 과목 등으로 대체한다든지 기독교 사학들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이번 소송은 기독교와 불교계의 대리전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강의석 씨 편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의 변호사들이 대거 변호인단에 들어왔다. 아울러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합류했다. 김동건 변호사는 참여불교재가연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등 독실한 불교신자다. 대광고측은 기독교계 대표 로펌인 법무법인 로고스가 변호를 맡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보호 측면에서 불거졌던 사건은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대립 차원으로 번졌다. 강의석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모 변호사는 “사실상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과 독일에서도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문제가 여러 차례 법의 판단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87년 공립초등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창조론도 가르칠 것을 명시한 루이지에나 주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독일에서는 지난 95년 연방헌법재판소가 공립학교 교실에 십자가를 걸어두는 행위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건 사립학교가 아니라 공립학교의 경우이다. 이 판결들은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사립학교에서 문제가 된 강의석씨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에서는 사립학교에 대해 국가가 일체의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신입생들을 고교추첨제를 거쳐 강제배정하지도 않는다. 사립학교를 순수한 사적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국내 사립학교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립학교는 공립에 준하는 요건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다.

종교학교는 종교학교 나름의 건학 이념을 포기하라는 얘기냐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해법은 무엇일까. 지금 서울시는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대다수 학생들이 종교적 신념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를 배정 받는 현실이다. 그래서 기독교계 안에서는 “정부가 하루속히 모든 학생들에게 학교선택권을 줘 개인의 신앙이 존중받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정책을 폐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대광고등학교가 (지원하는 학생만 받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할 방침을 세워 주목된다.

그러나 강의석 씨는 ‘지원제도’로 바꿔도 ‘종교의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2004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의 시설이 좋고, 대학입시 성적도 좋다면 학생들한테 선택권이 있어도 종교 신자만 지원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비신자여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 학교에 간다는 거다"라는 것이다. 공교육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종교를 이유로 학생에게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움이 있는 페널티를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종교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좋은 방법은 ‘신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일방적 메시지 선포 같은 도식화돼 있는 교육이 문제라면 다양화된 프로그램으로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 사학들이 CCM 공연, 명망 있는 기독교 인사 초청 강연 등 많은 시도와 노력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무대와 객석의 정서가 서로 괴리된 구조에서는 설교나 강연이나 공연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한 사람’이라는 노래가 대중 애창곡이 된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노래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짙은 종교색의 노래이다. 그럼에도 많은 대중은 이 노래를 사랑하고 있다. 이 노래는 소모품화 돼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너는 귀하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라며 존재감을 키워줬다. 이런 존재감, 자신감을 키워주는 장으로 예배를 혁신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그 형식은 비단 문화 행사가 아니라 설교가 되더라도 먹힐 것이다.

그렇다면 ‘출석 체크’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혁신된 예배의 첫 출발이다. 이렇게 된다면 ‘제 2의 강의석’은 없을 것이다. 건학이념의 실현이 어찌 제도와 강제력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할까. 잠시간에 혼란이 있더라도 모든 방법에 인격성을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소위 ‘믿는 학생’도 채플을 의무감 때문에 피하고 싶어할 것이다. 전환기라고 한다. 종교교육 역시 전환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