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마리 소를 도살하게 된 52살 된 강화도에 사는 여성 농민, 자살했다. 왜 그랬을까. 이웃들은 “자식처럼 마음을 주고 정성스레 키운 소를 모두 잃어서”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충주지역 일부 농가들은 정부 대책이 마련되기 전에 멀쩡한 가축들을 살처분할 수 없다며 축산당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닭, 오리 때도 가슴 조아렸던 농민들, 이젠 가족 같은 소를, 그것도 멀쩡한 상태에서 묻으려 하니 얼마나 속이 검게 타 들어갔을까 싶다.

내륙 중심부로 확산된 올해 구제역은 지금까지 4만 8천여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으로 희생시켰다. 보상금액만 625억 원, 최악이었던 2002년의 보상액을 이미 추월했다. 확산 속도는 유례없이 빠르다. 포천 연천에 이어 지난 8일 강화에서 다시 발생한 지 불과 10여 일만에 130km나 떨어진 충주로 확산된 거다.

한편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할 가축 매몰지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충주시 이야기인데.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의 만 단위가 넘는 가축을 이번 주까지 모두 살처분해 매몰할 계획이다. 사실 구제역으로 살처분하는 가축은 해당 농가 근처, 농가소유 토지에 묻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 시가 이웃주민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아직 20%의 가축을 묻을 매몰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인천 강화군도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한다.

침출수 때문에 지주들이 반대해서 땅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한다. 수년 전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가축을 집단 매몰했던 충남 천안 또 전북 정읍, 김제에서 침출수로 인한 오염 진행이 의심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암모니아성 질소 농도와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했다는 것이다. 또, 일반 세균과 대장균이 대량으로 검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농촌은 지하수를 파서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나.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다고 해서 구제역(口蹄疫)이지? 예전 소 아구창(牙口瘡)으로 불리던 그 병이다. 예방과 치료법도 없다. 현재로선 죽이는 것밖에 없다. 말이 점잖아 살처분이지, 생매장이 보통이다. 이렇게 참혹한 죽음을 맞는 동물의 수가 한번에 보통 십만 단위다. 생태계에서 이토록 무차별적인 대량학살이 또 있을까?

멀쩡한 동물도 예방적 차원에서 죽이는 형편인데, 죽이지 않고 예방할 길은 없는지, 농민의 죽음을 보고 생각해보게 된다. 구제역의 평균치사율이 50%에 크게 못 미친다. 절반 이상은 사실 억울한 죽음일 터이다. 정작 인간 스스로는 실낱 같은 가능성에도 생명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 존재이면서. 그러나 죽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면 죽이는 과정만이라도 생태학적 고려가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창궐할 당시 한 인터넷신문은 살처분의 허실을 보도한 적이 있다. 내용을 접해보니 충격 그 자체이다. 포르말린이 살처분에 사용되었는데, 이건 발암물질인데다 환경오염도 유발한다. 게다가 CO2가스를 살포하는데 1분 안에 죽음에 이른다는 공식과는 달리 가축들이 잘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 근육마비제만 넣고 살처분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죽음의 고통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생태운동가들은 공장식 축산방식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치명적인 돌림병에 맥을 못추는 공장식 축산방식과 이윤 이외의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 축산 확대 정책이 문제이다. 보다 많은 고기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탐욕은 동물에게 비단 전염병을 발병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 성인병을 안겨준다. 이런 성인병은 결국 부실화되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숨은 주역이자 가정 파괴범이 된다. 생명사랑, 이것이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