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목회 초년생 시절인 30대에 ‘월간목회’지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진땀 흘린 심방설교

미신사회에서 깊이 젖은 생각 탓인지 나이가 연로한 신자들들은 목회자가 심방 시에 하는 설교를 무슨 점패(點封)나 받는 양 생각하는 때가 있어 목회자를 당황하게 할 때가 있다. 또는 목회자가 자기 가정에 와서 하는 설교를 통해서 자기에 대한 목회자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는 경향이 있기에 심방설교는 어려움을 느낀다.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한 번은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본문으로 택한 성경구절이 착각을 일으켜서 내용이 그 가정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 가정은 화평(和平)을 긍지로 삼고 있는 가정이요，또 늘 자기 가정은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고 믿는 터였다.
그런데 내가 택한 본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이였다. 시35편의 말씀인데 그 내용은 다윗이 사울의 모함에 몰리어 은둔행각을 다니는 동안에 너무나 괴로와서 중심으로 부르짖는 기도로 그 내용은 ‘어서 속히 원수를 물리쳐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내용은 격렬한 것이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읽기 시작하면서 몹시 당황한 것은 그 가정보다 나였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구절이 하나쯤 나오겠지 생각하며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가정에 부합되는 내용이 나타나기는커녕 점점 그 내용이 격렬해 가고 있었다.
“나의 하나님이여，나의 주여，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마지막 28절까지 되고 말았다. 그 본문을 설교하는 나는 완전히 낭패감에 빠쳤고 진땀만 바짝바짝 나고 입은 이 소리 했다가 저 소리 했다가 횡설수설로 가득차고，상대방의 얼굴은 의아와 어떤 불만으로 가득찼던 그 일이 지금도 내 얼굴을 붉히게 한다.
설교를 마치고 아무래도 큰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비록 목회자의 위신은 떨어져도 내가 착각을 일으킴으로 이런 결과를 빚었음을 사과하자 그 때야 그 집사님이 얼굴을 펴며 한바탕 웃어넘기므로 오해를 모면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후부터 섬방 설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추도식과 설사

잠실 아파트에 사는 어느 신도댁에서 일주기 추도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때는 대심방 기간이어서 심방을 마치고 6시쯤 도착되었다. 많은 친척이 기다리고 있었고，음식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예배 전부터 아무래도 뱃속에 이상이 있었다. 아마 낮에 여러 가정에서 오만가지 음식을 주는 대로 과식한 탓인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싶은 마음으로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 했다.
사도신경을 고백으로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함께 간 심방대원이 대표기도를 드리는 중에 아니나 다르랴. 뱃속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도 중에 나갈 수도 없고，또 나갔다 하더라도 기도가 끝난 후에 설교자가 화장실에 가 있는 것을 알면 이 무슨 낭패랴.
진퇴양난이었다.
혀를 깨물듯 잔뜩 죽을상을 하고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오고 있었다. 웬 기도가 그리 긴지 가까스로 기도가 끝난 후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는 동안，신경은 온통 그쪽에 가 있었고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부심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설교는 어찌 되어 가는 판인지 뒤죽박죽이 되고 얼굴은 비참할 정도로 안간 힘이 노출되고 있었다.
아마 그 가정 식구들은 왜 목회자의 표정이 저리도 비참해 있는지 고인(故人)에 대한 애도(哀悼)탓이나 죽음에 대한 심각한 탓으로 좋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차라리 고인이 부러울 정도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교는 갈팡절팡하다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예배가 끝난 후에 감사하다는 인사치레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화장실을 찾았고 정돈하고 앉은 후에 한숨처럼 외친 소리가 ‘주여，감사합니다’였다. 그리고 쓰리고 아픈 배를 쓸며 하는 결심은 ‘다시는 과식 과욕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작전상 후퇴

우리 교회 주변 마을은 가난한 탓인지 미신이 성행하고 있다. 무당집을 알리는 백기가 장대 끝에서 펄럭이고 있는 것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어느 가을 대심방 기간이었다.
어느 신도의 가정이 미신을 철저히 섬기는 가정에 세 들어 있는 탓에 늘 심방 대상에 빠지다가 그 해 심방에는 누구의 권고 탓인지 심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보였다. 우리 심방대원은 큰마음 먹고 전투적인 태세로 그 가정에 들어가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안방 문이 열리더니 욕지거리가 터지고 그 신도의 문이 열리더니 예배를 보려거든 내일 당장 이 집에서 나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행한 찬송이 끝나자，겁을 잔뜩 먹은 교우는 그저 기도만 주시고 마시라는 간청을 했고, 그 간청은 가뜩이나 소심(小心)한 내가 모처럼 강하게 먹었던 마음마저 약화시키고 말았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하고 나서 우리는 물러 나오고 말았다. 핑계는 작전상후퇴였다.
지금도 그 후퇴가 옳았는지 더 강행군 하는 것이 옳았는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그 뒤에 그 미신 가정은 나오지 않았으나 상당히 미안해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고，그 집의 친척들이 하나 둘씩 나오는 것도 막지 않는 것을 볼 때 때로 너무 무리한 강행군만이 능사(能事)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홍익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