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한달도 채 안 남겨둔 상황이다. 선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여론조사 공표이다. 어제(5월 10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신문>, CBS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선거일 6일 전 즉 5월27일부터는 투표 마감시간까지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 모의투표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보도 할 수 없다. 여론조사 얘기를 해보려 한다.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이나 특정집단의 의견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이 조사의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애초에 여론조사는 상품판매를 위한 시장조사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시장조사기법이 정치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였다. 미국의 통계학자인 조지 갤럽이 당면한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전국적인 의견조사를 실시했던게 효시다.

갤럽은 1936년 미대통령 선거에서 루즈벨트가 랜던을 누르고 승리할 것을 예측해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1948년 선거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의 패배를 전망하는 바람에 망신을 사기도 했다. 트루먼이 이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냐 하면 아니다. 사실 국회의원은 물론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후보를 선정하는 당내 공천에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결정도 실은 여론조사로 이뤄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거 잘 조사해야 한다. 단어 하나, 질문 문구 하나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별 지지율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여론조사 기관마다 질문이 다 다르다. ‘어느 후보를 더 좋아하나’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어느 후보가 가장 나은가’ ‘내일 선거가 있다면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겠나’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는 판이한 답으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질문이 일단 공정해야 한다. 한 유명 정치인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때 한 여론조사 기관이 이렇게 물어봤다. ‘법원 무죄 선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시면 1번, 법원의 무죄 선고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2번을 눌러주세요’라고. 어떤가? 항목이 공정하다고 보나? 그렇지 않다. ‘무리하게 기소한 만큼 당연한 결과’와 ‘무죄 선고가 잘못된 것’이라는 답은 균형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응답자의 49.9%가 “무죄 판결은 당연하다”며 1번을 골랐다. ‘밥이 보약이라고 하는데 밥을 먹겠다면 1번, 그래도 안 먹겠다면 2번을 누르세요’ 이런 질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대통령 지지도 조사와도 직결된다. ‘귀하께선 아무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얼마나 잘하고 있다고 혹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가? ‘잘하고’ 앞에 ‘얼마나’가 붙었다. 하지만 ‘얼마나’는 ‘잘못하고’ 앞을 수식하지 않는다. 이건 ‘얼마나 잘하느냐’라는 말이 될 수 있는데, 잘하고 있다는 전제로 물어보는 셈이다. 지지율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질문에 ‘개혁’이란 말이 들어가면, ‘개혁’이라는 어휘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에 높은 호응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지불식 간에 응답자를 호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의 품질을 볼 때 응답률을 가장 먼저 따진다고 한다. 응답률은 통화건수를 전체 통화시도횟수로 나눈 수치다. 응답률이 10%라면 1000명 표본조사를 위해 무작위로 추출한 전화번호 1만개로 전화를 걸어 10명 중 1명꼴로 답을 얻어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응답률이 낮을수록 여론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선 응답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어제 각종 언론 여론조사는 20%를 넘지 못했다. 통상 우리나라 정치 여론조사의 경우 응답률이 15∼20%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우 낮은 셈이다.

전국에서 1000명을 상대로 전화로 조사할 때 보통 나이, 지역, 성별 등 인구 구성표에 따라 고루 분포되도록 표본을 추출한다. 서울 20대는 남자 24명 여자 25명, 부산 20대는 남자 8명 여자 8명을 조사하는 식이다. 그러나 ARS 조사는 인구 구성표를 채울 때까지 한없이 전화를 돌릴 수가 없다. 1000개의 표본을 조사하기로 했다면 5000명에게만 전화한 뒤 나머진 가중치로 채워 넣는 식이다. 5000통 전화를 돌린 뒤 조사에 응한 인천 20대 남성이 3명뿐이라면 이들의 답에 2를 곱하게 된다. 이것이 ‘가중치를 준다’는 의미다. 만약 조사에 응한 3명이 모두 우연히 특정 정당 지지자라면 가중치만큼 결과가 더 왜곡된다.

여론조사는 참고용이지 맹신할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여론조사의 오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 어떤 재보선 지역은 무려 20%로 앞서던 후보가 거꾸로 10% 차이로 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야당 후보에겐 10% 이상의 가중치를 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자체로 정확하지 않은 여론조사, 그래서 가중치를 둬야 하는 여론조사, 이런 거 뭐 하러 하겠나? 정책 경쟁을 벌이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구하는 자세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여론조사는 참고자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