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긴 여행을 통하여 딸이 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 에텐시에 왔습니다. 미국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나라를 찾아갈 때는 늘 서투릅니다. 그것도 시카고에 내려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또 내린 공항이 아니라 경전철을 타고 다른 터미널을 찾아가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했는데 그래도 아주 쉽고 여유 있게 종착공항인 콜럼버스 공항까지 찾아왔고 마중 나온 딸 내외의 영접을 받아 집까지 잘 도착했습니다.

딸을 미국으로 보낸 지 겨우 7개월여 밖에 안되었지만 30년이 훨씬 넘도록 딸과 함께 같이 살았던 세월보다 지난 7개월이 더 긴 것처럼 느낀 것은 함께 있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공간적 거리감과 더불어 “있을 때 잘 할 걸...”하는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절실한 후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난 별로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목사로서의 사명에 대한 집착 때문에 늘 자식들은 2순위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자식들은 하나님이 키웠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셨을 뿐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는 부족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7개월이 더 궁금했었고 와보고 싶었었습니다.

딸의 집은 사위가 교수(공대)로 봉직하고 또 딸이 연구원(생명공학)으로 있는 오하이오대학교 캠퍼스에서 5Km 정도 떨어진 숲속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큰 집은 아니지만 1층은 생활공간으로 2층은 서재와 침실로 된 불편없이 살 수 있는 집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2층을 정리하여 침실과 서재를 따로 준비하여 두어서 나 역시 평안히 쉬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입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이사와 전학을 다니면서 고생스럽게 키운 딸이기에 이 정도의 환경조차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자식이 얼마나 큰 면류관인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여건과 환경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자상한 아버지는 못되었지만,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자랑할 만한 무엇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향한 내 사랑만큼은 알아달라고 말입니다. 현실적인 부족이나 사랑의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남보다 못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말은 나 뿐 아니고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일 것이고 모든 자식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말일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좋은 환경과 풍족한 여건을 준비하지 못했어도 그 마음은 어느 부모인들 소홀하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가 자식을 풍족히 기른 부모보다 그 사랑이 더 애틋하고 진할 것입니다. 자상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부모가 어쩌면 자식에 대한 더 깊고 절실한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별다른 효도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알아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비록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못하는, 어쩌면 자식들에게 짐이 될지 몰라도 그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기대, 간절한 기도와 소망은 아직도 활화산처럼 뜨겁고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소중한 삶의 경륜들은 이제 지혜로 남아 자식들의 정신적 후원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기억력을 빼앗아 가버리고 더 이상 생산적 능력은 없어도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자신을 세우고 자식을 키워온 삶의 통찰력은 어느 똑똑한 젊은이보다 뛰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기억력을 빼앗아 간 자리에 통찰력을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젠 아무것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에 대한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부모공경을 축복의 조건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든 부모가 나이 들면서 잠시 머물 침실과 조용한 서재하나 준비한 딸의 배려에도 감격하는 아버지로 변해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배려한다면 여러분의 부모는 여러분 때문에 여생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