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파마머리 논쟁에 휩싸였다. 그제 이 시간에 나온 홍준표 의원이 불을 지폈다. “요즘 검사들 보니까 파마나 하고, 일은 뒷전이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파마나 하는 검사’는 김준규 검찰총장이다. 그러자 김준규 총장, “내 머리 갖고 별별 얘기가 나온다” “제 멋대로 검찰을 바라본다”라며 반박했다.

사실 김준규 총장은 자연산 곱슬머리다. 그런데도 파마를 했니 안 했니가 화제다. 스폰서 검사 파문과 맞물려 증폭됐다. 김준규 총장 이야기는 이것이다. 정치권에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하는데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검찰만큼 깨끗한 조직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여담 좀 하자. 김준규 총장의 방금 말,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검찰에 대해 상대적 청렴이 아니라 절대적 청렴을 바라고 있지?

오늘 주제는 이른바 패션 폴리틱스이다. 패션을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았을 때 패션 폴리틱스(Fashion Politics)라는 말을 쓴다. 역사적으로는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당시 상퀼로트 즉 반 퀼로트 운동이 첫번째로 평가된다. 절대봉건왕조 타도를 외쳤던 혁명파들이 왕족과 귀족들의 옷차림이었던 퀼로트 즉 반바지를 거부하고 긴 바지를 입었던 데서 시작된 용어다. 혁명은 성공했다. 그래서 그 뒤로 긴 바지가 유행했다.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어제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선정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에겐 ‘백바지’라는 별명이 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선서하던 날, 2003년 4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유시민 의원은 티셔츠에 흰색 면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러자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버릇없이 그런 옷을 입고 오느냐”라는 지적이 쏟아졌고, ‘생각 없이 입고온 복장’을 빗대 ‘백바지’라고 불렀다.

따지고보니 ‘백바지’ 말고 ‘난닝구’ 논란도 있었다. 2003년 가을의 민주당. 민주당의 향후 진로를 놓고 당내 이견이 분분할 무렵 신당 창당을 주장하던 이미경 의원이 머리채를 잡혀 휘둘렸고, 당무회의장에 느닷없이 ‘난닝구’ 차림의 사내가 나타나 ‘깽판’을 부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난닝구는 ‘이성보다 힘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하고 호남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정치집단’, 구체적으로 말해 구 민주당이나 구 민주당 출신을 비하하는 의미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패션은 ‘단아’를 상징한다. 바지를 입으면 전투모드나 임전모드로 해석된다. 한때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이 화제가 됐다. 고 육영수 여사 스타일의 올림머리를 고수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강하고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얼마전 영국에서 새 총리가 탄생했다. 캐머런이 그런데. 이 사람의 만삭의 부인 서맨사 캐머런이 화제다. 지난 1월 영국 패션잡지 태틀러에 옷 잘입는 여성 5위에 올랐다.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는 6위였다. 세라 페일린 미 부통령 후보도 패션 아이콘 대열에 낀다. 그가 신었던 하이힐이 아마존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의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패션이 세계적 화제를 불러 모은다. 빨간 망토 차림, 진주목걸이, 아르마니 정장까지 66세 나이를 의심케 하는 빼어난 패션감각이 뉴욕타임스를 장식했다.

패션 폴리틱스의 핵심적인 관찰 대상은 역시 여성이다. 뉴스는 남편(husband), 머리모양(hairdo), 치마길이(hemline)의 3H가 고작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패션 기사가 나가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본질을 외면한 여성 비하적 보도’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어쩌랴. 인정받는 여성 정치인일수록 패션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커지는 것을. 뉴욕타임스도 능력 있는 여성 정치인들이 패션감각이 있다고 해서 정치에 대한 진지함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논평했다.

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있어서 패션 폴리틱스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첫 유럽순방 때 영화 ‘매트릭스’처럼 검정 하이힐 부츠와 검정 롱코트의 여전사(女戰士) 차림으로 능력과 권세를 과시했다. 전문직 여성들은 1970년대만 해도 남성복 같은 정장으로 여성성을 감췄지만 요즘은 자신 있게 개성을 드러내는 추세다. 그래도 치마든 바지든 자신감과 권위를 나타내는 재킷은 꼭 갖춰 입는다.

패션은 정치의 단골 소재다. 정치적 함의를 담기도 하고, 패션 아이콘으로 눈길을 끌기도 한다. 우리는 전자에 가깝다. 서구는 후자에 가깝다. 우리 정치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가꿔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기 정치에 대한 관념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를 위해 가미가제식으로 충성 봉사하는 극단성으로는 정치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정치가 개성과 소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