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 '코끼리 공수 비상령'이 걸렸다. 국내 동물원에 9마리 남아 있는 코끼리 가운데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암코끼리가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 . 현재 서울대공원에는 임신 가능 연령 그러니까 15~30살 전후를 넘거나 경계선에 놓인 45세와 28세의 암코끼리가 있다. 그러나 고령(高齡)으로 임신 능력도 떨어지고 수코끼리도 이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 국제협약(CITES) 때문에 돈을 주고 사고팔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 기증을 받아야 한다. 이 탓에 외교통상부까지 나서서 코끼리를 확보하려 애를 썼다. 어떤 식으로 땀 흘렸을까. 인도와 태국 같은 코끼리를 대량으로 보유한 나라들을 상대로 기증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코끼리 보호에 완고한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래서 "암코끼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이대로 9마리 코끼리가 나이 들어 죽게 되면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상상할 수 없다. 어린이들에게 코끼리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암코끼리 확보가 급하다"고 말했다.

사실 코끼리는 국가 간 친선의 표시로 종종 사용된다. 얼마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오랜 우방인 북한에 코끼리와 기린, 얼룩말 등 야생동물을 선물할 것으로 알려져 환경보호론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동물원 시설이 열악해 생존 위협에 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와중에 스리랑카가 코끼리 두 마리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다. 스리랑카가 어린 코끼리를 쌍으로 외국에 주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코끼리를 보내기로 결정하며 각별한 우정을 표시한 곳은 한국의 한 시민단체다. 김해성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그렇다.

<국민일보>를 보면, 얼마전 스리랑카 대통령을 만난 김해성 목사가 “올 3월 스리랑카 방문 때 대통령에게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고 전한 내용이 있다. 김해성 목사의 말이다. “스리랑카 대통령 비서에게 전화를 했죠. 코끼리를 달라고, 그리고 이왕이면 암수 한 쌍으로 달라고. 그랬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김해성 목사가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김해성 목사와 라자팍세 대통령의 인연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해성 목사는 경기도 성남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경기도 광주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에 얼굴이 시커멓고 의복이 허름한 외국인 2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니까 얼마 전 스리랑카에서 한국에 왔고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하더라.

김해성 목사는 이들을 차에 태워 센터로 데려가서 재워주고 직장도 구해줬다. 그 친구들을 시작으로 우리 센터에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센터에 드나드는 스리랑카 노동자 수가 200명에 이르렀다. 김해성 목사는 2003년 4월 스리랑카 설날을 맞아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그때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그 파티에 자신의 작은 아버지를 초청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작은 아버지는 당시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김해성 목사가 극진하게 대접했다. 감사한 삼촌은 김해성 목사를 스리랑카로 초청했다. 그런데 이 삼촌이 지금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김해성 목사는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을 안아준 것뿐인데”라고 말했다. 김해성 목사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충심으로 남을 섬겼다. 2004년 말 스리랑카에 지진해일이 와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430만 달러어치의 의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당시 국무총리였다.

김해성 목사는 말한다. “한국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은 그 나라에서 다들 잘살고 있어요. 사장이 되거나 고위 관료가 된 사람도 여럿이죠. 또 상당수가 무역거래를 해요. 상대국은 당연히 한국이죠. 언어가 되고, 인맥이 있고, 물품을 잘 아니까.”

김해성 목사는 또,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그 나라 최고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며 “그들 중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젊은 시절 미국에서 접시 닦으면서 공부했던 사람 아니에요? 미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외국인 노동자였던 셈이죠.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초대 대통령이 된 거예요”라고도 했다. 성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작은 사랑이, 온 국민의 코끼리 볼 자유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