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사죄의 뜻을 밝혔다. "국민들께 죄송하고, 미안하고, 사과드린다"고 고백했다. 반야월 선생하면 정말 우리 가요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소양강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아빠의 청춘' 이렇게 71년간 5000여곡을 작사한 분이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친일 가요를 만든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이다. "총칼 앞에 본의 아니게 그런 노래를 만들어 폐를 끼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지금은 후회한다"고 말했다. 실제 반야월 선생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한국과 일본 인구를 합해 1억이 된다는 점이 감안돼 만들어진 노래가 있는데, ‘결전 태평양’ 또 ‘일억 총 진군’이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에 반야월 선생의 이름을 넣었다.

따지고 보면 일제의 강제로 친일 노래를 만든 이들이 많다. 이 중 한 명으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도 꼽혔다. 사료만 놓고 본다면 안익태 선생의 친일 행적은 부인할 수 없다. 1942년 베를린에서 만주국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만주국’을 작곡·지휘했기 때문이다. 만주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 아닌가. 이 만주국의 창설을 축하하는 곡을 작곡하고 대형 일장기가 걸려 있는 음악당에서 이를 직접 지휘한 자료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안익태기념재단측은 반박했다. 안익태 선생이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까지도 일제에 의해 탄압받은 사례를 소개했다. 게다가 안익태 선생은 일제 패망 직전까지 한국환상곡을 연주하면서 자신의 조국 코리아를 알렸다는 것이다. 만약 친일 음악인이었다면,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가는 곳마다 한국환상곡을 연주하며 일본에 합병된 한국의 고난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안익태 선생하니까 홍난파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홍난파의 경우 자발적 친일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선화’ ‘옛동산에 올라’ '고향의 봄' '퐁당퐁당'으로 유명하지? 젊은 시절 민족음악을 추구했다. 그런데 일제의 문화통치가 강화되면서 1936년부터 철저한 친일음악인으로 변절했다. 홍난파는 춘원 이광수가 작사한 ‘희망의 아침’을 작곡하고 많은 친일 노래를 지휘했다.

지금까지는 가곡 이야기를 했는데 가요 중에도 자발적 친일 예술인들이 꽤 있다. 박시춘은 일제가 조선을 병참기지로 만드는 정책과 또 일본 국민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노래, 일본 정신과 일본 정서를 찬양한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다. 제목만 접해도 알만하다.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안해(아내)’, ‘혈서 지원’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노래 가사 중에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 이런 부분은 해방 후 ‘태극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로 바꿔 불렀다는 점이다.

가수 백년설은 아예 ‘백년설 가요대’를 조직해 지방 순회공연을 다니며 왕성한 친일 활동을 펼친다. 워낙 노골적인 친일을 한 터라 김구 선생이 이끌던 임시정부에서도 숙청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백년설은 앞서 소개한 ‘혈서 지원’ 외에 만주 이주를 장려하는 노래 ‘대지의 항구’ 이런 것들을 불렀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쪽도 이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때 대중 예술계 인사들은 ‘기예증’이라는 사실상의 공연 허가증을 발급 받지 않고는 예술 활동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노래를 하려면 친일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친일행위를 옹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당시 대중 예술인들은 주로 악극단 형태로 전국 방방곡곡, 그러니까 어느 수준 이상의 문화 혜택을 받는 계층들을 상대로 공연을 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일제의 문화 선전 선동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예술 행위를 펼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만 피하면 지조를 지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예술인이 예술에만 몰두하지 못했던 불행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경분 씨가 쓴 책이 있다.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인데. 히틀러 집권기, 나치 치하에서 음악가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다룬 책이다. 나치 치하에서 12음 기법을 고안한 쉰 베르크나 한스 아이슬러, 힌데미트는 유대인이거나 좌파적 성향, 현대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아 망명길을 떠나야했다. “이성보다 가슴과 감정에 더 호소하는 음악은 독일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판정을 누가 했느냐.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였다. 히틀러에 의해 축출된 피아니스트이자 재즈작곡가 슐호프는 독일내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폐결핵으로 죽어갔으며, 빅토르 울만과 기디언 클라인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예술가들이 독일을 떠나 망명을 떠나자 음악계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지휘자인 카라얀은 나치당에 가입한 뒤 출세의 기회로 활용했다. 그리고 국내외 연주활동으로 ‘나치 외교관’ 구실을 했다. 나치 정권은 베토벤과 바그너, 부르크너의 음악이 ‘영웅심’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격발시켜 민족공동체를 끌어낸다며 정책적으로 장려했었고, 카라얀은 열심히 지휘했다고. 예술가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의롭지 못한 일에 참여하는 것, 이것도 부역이란 것이다.

결국 잘못된 역사에 동조하지 않아야 하고, 설령 했더라도 분명히 ‘잘못됐다’라고 선언해야 한다는 말이다. 올해 아흔 셋인 반야월 선생. 이젠 영예롭게 일생을 마무리하고 싶을 나이인데 사과했다. 반성한다는 표현을 하기 힘든 연배 아니었겠나. 큰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발언이 있었던 자리, 주최한 사람은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이다. 이주영 의원은 "반야월 선생의 진솔한 사과로 이제 (우리 사회가) 용서해주고 화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야월 선생의 반성이 예술인들의 책임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