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 교육청의 이른바 ‘돈 봉투 사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건은 장만채 교육감 당선자가 “도 교육청 간부 몇 명이 내게 축하금 명목으로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돈 봉투를 건네려 해 돌려보냈다”고 공개함으로써 불거졌다. 사건의 본질은 매우 간단하다. 전남도교육청 간부들이 새 교육감 당선자에게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건네며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가장 깨끗하고 청렴한 공복(公僕)의 자세로 일선 교육행정을 이끌어야 할 교육청부터 부패의 늪에 빠져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오죽하면 이 사실을 공개한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당선자가 “당선 직후 간부들이 인사차 와서 돈 봉투를 자연스럽게 내미는 것을 보면서 교육계 부정부패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겠는가. 한 직원에 따르면 예전부터 새로 오는 교육감에게 간부들이 축하금을 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돈 봉투 전달은 무슨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며 관행이었던 것이다. 일부 간부들이 교사-교장-교육청이란 먹이사슬 구조에서 확립된 관행에 따라 무신경하게 처신했다가 문제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

구속된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은 100만 원도 뇌물이냐 이렇게 물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 일이 생각난다. 부하 직원과 관내 교육장들로부터 승진이나 좋은 보직의 대가로 거액을 받고, 측근의 승진을 위해 승진서열 조작 따위를 지시한 혐의다.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매관매직이고, 법을 무시한 전횡이다. 반성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공정택 씨는 재판 중에 자신이 받은 100만 원 뇌물에 대해 "명절을 잘 쇠라는 뜻으로 알았다, 어떤 사람이 100만 원을 주며 잘 봐 달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부패의 일상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교사에게 주는 이른바 촌지, 이걸 부정이고, 비리로 보는 이들이 많지 안 것도 현실이다. 寸志. 손가락 마디처럼 짧은 뜻이라는 얘기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고 돼 있다. 촌심(寸心), 촌의(寸意), 촌정(寸情)이라고도 한다. 그 다른 표현이 미성(微誠)이다. 미미한 정성이라는 뜻이다. 촌지가 어색해서 거마비(車馬費)라고 한다. 수레 타고 말 타는 비용을 드린다는 얘기다. 이런 뜻을 당사자가 외국에 나갈 때면 장도(壯途)라고 적는다. 대단한 길에 올랐다는 것인데 대개 놀러 가는 경우여서 글자 뜻 자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렇게 많은 한자어로 된 단어가 있고 사전에 등재된 걸로 보면 촌지는 꽤 오래된 관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주고받는 예절도 따로 있다. 주는 사람은 “저기,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제 성의라고 생각하시고…”라고 해야 한다. 받는 사람은 뭔가 겸연쩍어 하면서 “아니, 이러시면 제가 곤란하지요…”하고 몇 번 빼야 한다. 그러면 뇌물 제공자는 “아, 이러시면 제 손이 부끄럽습니다”하면서 우격다짐으로 찔러 넣는다. 당연히 받는 사람은 더 못 이기겠다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이래야 한다. 그러나 요즘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휴대전화를 통한 모바일 교환권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사양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

학부모와 교사 간에 오가는 촌지는 외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한국적 현상이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식을 가르치는 훈장에게 학비조로 집에서 거둔 가장 좋은 수확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순수한 감사의 뜻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같이 배우고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가는 교육이 아니라 경쟁하는 교육이 되면서 촌지는 뇌물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엔 맨 입으로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떡값’이란 말도 배우고, 스스럼없는 뇌물수수를 처세의 한 방편으로 여긴다. 왜, ‘기름칠한다’라는 말도 있잖나. 떡값을 써야 모든 일이 윤활유를 친 기계처럼 매끄럽게 잘 돌아가는 세상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떡값의 규모가 매우 크다. 통상 몇 만 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게 떡값이다. 그런데 1인당 수천만 원의 떡값이 오간다. 2005년에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법무부차관에서 특정기업으로부터 2천만 원의 떡값을 받은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2천만 원. 제가 그때 한 방앗간에 문의해서 이걸 다 떡값으로 한다면 어떤 떡들을 받게 되나 라고 물었다.

약식 200kg, 찰떡 300kg, 두텁편 200kg, 모두베기 100kg, 구름떡 200kg, 시루떡 240kg, 인절미 300kg, 가래떡 400kg, 절편 400kg, 꿀떡 240kg, 개피떡 120kg, 찹쌀떡 100kg, 추석송편 100kg 이걸 다 사도 2000만 원이 안 된다. 이거 한 사람이 평생에 다 먹기도 힘든 떡값 아닌가. 그런데 이걸 매 명절 때마다 받았다는 것이다. 이걸 한꺼번에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노회찬 의원은 밝혔다.

교육청 간부들이 교육감 당선자를 찾아가 돈 봉투를 건넨 게 순수한 인사일 리 없다. 어떻게든 새 교육감의 눈에 들려는 줄 대기 행위가 아니겠는가. 돈 봉투만이 아니다. 장만채 당선자는 “적지 않은 교육청 직원이 학연과 지연, 친분을 이용해 내게 접근하려 했다”고 밝혔다. 줄 대기가 승진이나 요직 발령 등 사욕(私慾)을 채우려는 청탁으로 이어지고, 비리 사슬을 더 단단하게 하는 건 자명하다. 교육청 일각에선 “당선자가 취임 전 기강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발언”이라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새 교육감들이 해야 할 일이 엄청나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