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도 징크스가 있다. 묵주 반지를 끼는데, 밴쿠버올림픽 때는 은반지를 끼었다고 한다. 오서 코치가 금반지를 하면 올림픽 금메달을 못딴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코치’했기 때문이다. 또 올림픽에서는 푸른 옷을 입어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김연아의 마지막 의상은 푸른색이었다.

세계 링킹 1위는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딴다는 징크스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깬 사람이 바로 김연아 선수이다. 그래서 당시 언론은 “김연아, 올림픽 징크스 날렸다”라며 대서특필했지? 금메달을 땄을 때의 언론 보도다. 세계 랭킹 1위는 올림픽 금을 못딴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김연아가 그것을 날려버렸다는 뜻이다. 징크스가 징크스를 깼으니, 둘다 옳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징크스는 사실 과학적 근거는 없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 타당성도 전혀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 우연하게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에도 필연적으로 되풀이된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고약한 것은 징크스를 불면증처럼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거기에 갇힌다는 점이다. 어제 막이 오른 월드컵과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징크스들이 많다. 오늘은 이 징크스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지난 토요일의 대그리스전 승리는 유럽 징크스도 깼다.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 전까지 한국은 홈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고 유럽팀을 상대한 12경기에서 4무8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그리스전에서 화끈한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이후 원정에서 유럽팀을 잡는 성과를 이뤘다.

반면 그리스의 징크스는 계속됐다. 그리스는 2010 남아공월드컵이 통산 두 번째 본선 진출이다. 상당히 높은 FIFA랭킹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럴까. 유럽에 워낙 쟁쟁한 팀들이 많아서다. 첫 월드컵 무대였던 1994 미국 대회 때는 D조에서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불가리아와 싸웠는데, 모두 무기력하게 졌다. 첫 경기였던 아르헨티나엔 0대4로 무너졌다. 심지어 상대팀 선수 한 명에게 해트트릭까지 허용했다. 게다가 요즘 나라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한가. 그나라 국민에게 이번 패배의 충격은 더 클 것이다.

월드컵 징크스하면 ‘펠레의 저주’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펠레가 우승후보로 거론한 팀이나 칭찬하는 선수는 늘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에 눈물을 흘렸다. 펠레는 1982년 스페인 대회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스페인을 우승후보로 지목했으나 모두 4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또 1994년 미국대회에서는 브라질의 부진, 독일의 2연패를 예견했지만 결과는 독일 4강, 브라질 우승으로 나타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개인통산 최다골을 노리던 호나우두를 혹평했지만 호나우두는 펠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2경기에서 3골을 몰아치며 저력을 보여줬다.

펠레는 이번 월드컵에서 어느 팀을 우승 후보로 꼽았을까. 브라질과 스페인을 우승후보로 꼽았다. 이 두 팀 오는 수요일에 경기가 있다. 이번엔 펠레의 저주가 통할지 두고볼 일이다. 한편 남아공이 '개최국 징크스' 이어갈지도 주목된다. '월드컵 개최국은 항상 16강에 진출한다'는 개최국 징크스를 남아공이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첫 경기 무승부를 기록했지? 2006년까지 18차례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우승한 횟수는 6번, 2002년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개최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개최국은 본선 첫 경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번까지 포함해 개최국들의 1차전 전적은 14승6무이다.

뭐 사실 우승은 남미와 유럽이 나눠가지다시피 하는 건데, 그것도 로테이션된다. 남미와 유럽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부터 40년 동안 한 번씩 번갈아가며 우승을 차지했다. 1966년부터 보자. 유럽 잉글랜드, 남미 브라질, 유럽 서독, 남미 아르헨티나, 유럽 이탈리아, 남미 아르헨티나, 유럽 서독, 남미 브라질, 유럽 프랑스, 남미 브라질, 그리고 지난 2006년 유럽 이탈리아. 이 징크스대로라면 2010월드컵 우승국은 남미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강력한 후보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지그재그 징크스’가 있다. 월드컵에서 선전하면 다음 월드컵에서는 부진하고 그 다음 월드컵에서는 다시 선전하는 지그재그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16강에 진출한 것은 2002년 월드컵 단 한번뿐이지만 경기 내용면에서 봤을 때는 한 번 못하고 한 번 잘하는 '지그재그 패턴'을 반복했다. 한국은 1990, 1998, 2006년에는 선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한 반면 1986, 1994, 2002년에는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전세계에 널리 알렸다. 올해 잘 할 차례이다. 이 징크스는 꼭 맞아 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