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분전을 펼쳤지만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2010남아공월드컵 G조 조별리그 북한-포르투갈 경기를 보면서 ‘남북 단일 축구팀이 결성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 나만 가졌을까. 아닌 것 같다. 해외 축구전문사이트 ‘골닷컴’도 가상의 남북 연합팀의 전력을 예상해 눈길을 끌었다.

골닷컴 아시아 담당 에디터는 “남북 단일팀이라면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을 긴장시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각각의 장점은 이렇다. “한국은 오랜 시간 국가대표팀과 클럽팀 모두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이뤘다” “북한 또한 스피드가 매우 주목되는 팀” 등이다. 두 팀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부른다는 게 골닷컴의 분석이다.

○…경륜과 스피드의 결합, 그림이 나쁘지는 않다. 남북 축구, 교류 역사를 짚어본다. 분단을 예견했던 것일까. 남북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부터 광복 이듬해인 1946년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경평축구'가 열렸다. 이 경평축구는 60년 전인 1950년 한국 전쟁을 전후해 맥이 끊긴다.

○…한국전쟁 직후에 체제 경쟁이 심했던 때에 남북은 축구장에서도 서로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우리 축구팀은 1966년 월드컵을 앞두고 벌금을 내면서까지 불참했고, 북한 축구팀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안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하나. 상대가 나온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이 8강 진출에 성공하자, 이에 충격 받은 한국 정부는 북한을 물리칠 강한 축구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베일 아래의 팀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속에 사상최초의 105일 유럽 전지 훈련 길에 오른다. 유치함도 가지가지였다.

외면하는 척 하면서도 곁눈질했던 남북, 1976년 방콕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때는 준결승전. 북한에게 남한이 0대 1로 패했다. 남한은 분개했다. 북한에게 패한 데 대한 ‘열폭’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한 골키퍼가 부상으로 쓰러졌는데도 경기를 속행한 점, 바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당시 홍덕영 아시아 축구심판위원장은 이 때문에 괜한 오해를 샀다. 북한 청소년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온 형을 만났기 때문이다. ‘혈육을 만나려고 혹시 이적행위한 거 아니냐’하는 의심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경기장에서조차 경색된 남북관계가 6공화국 들어서 해빙기를 맞게 된다. 덩달아 스포츠 교류도 활발해졌다. 40년 간 중단됐던 ‘경평 축구’는 1990년 10월 남북 통일축구대회로 부활했다. 남북의 그때 전적은 1승1패였다.

○…이런 화해의 무드는 1991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때 남북 단일팀을 결성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단일팀 구성은 극적으로 이뤄졌고, 당시 남북한 선수 18명으로 구성된 코리아 팀은 대회 한 달을 앞두고 급하게 결성됐다. 남한 선수끼리 모여도 한 달이면 빠듯한데. 40년 동안 몸 한 번 같이 풀어본 일이 없는 남북한이 그 기간 동안 호흡을 맞췄다는 얘기이다.

선수단 결성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감독과 선수 구성 방법, 훈련 일정을 놓고 남북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이래서야 세계대회에서 선전은커녕 망신만 잔뜩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우여곡절 끝에 코칭스태프는 안세욱 북한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이 총 지휘를 맡고, 남대식 한국청소년대표팀 감독은 보조 감독을 맡았다. 선수단은 남측 선수 10명, 북측 선수 8명으로 구성됐다.

자, 이렇게 리스본으로 건너갔는데. 상대해야 할 팀이 기막혔다. 이미 유럽 프로축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즐비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포르투갈, 아일랜드였던 것이다. 하여간 대패만 안 하면 된다는 게 당시 남북 축구책임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기대이상이었다.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가 열리던 1991년 6월 16일 리스본의 벤피카 스타디움.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GK 최익형을 비롯해 이태홍 강철 이임생 같은 남측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수비진은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의 발을 꽁꽁 묶었고, 조인철, 최철, 정강성 같은 북측 선수들이 맡은 공격진은 빠른 속공으로 아르헨티나 문전을 넘나들었다. 0-0, 0의 균형이 이어지다가 경기 종료 2분 전, 남측 미드필더 조진호가 얻어낸 프리킥을 북측 공격수인 최영선이 강력하게 찼고, 이 볼이 아르헨티나 수비수 맞고 흐르는 순간 달려들던 북측 공격수 조인철이 25m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결과는 1-0 코리아 팀의 승리. 남북이 사이좋게 골을 주거니 받거니 해서 넣은 골이 결승골이 됐던 것이다.

2차전도 만만찮은 강호 중의 강호 아일랜드, 그러나 1-1로 무승부를 이뤘다. 3차전은 홈팀 포르투갈. 아깝게 0-1로 졌지만 1승 1무 1패로 8강에 올랐다. 물론 8강의 행진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상대가 브라질이었거든. 1-5의 대패였다. 하지만 최철이 멋진 다이빙 헤딩골을 넣어 '브라질의 5골과 맞먹는 멋진 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북한이 1차전에서 브라질 베스트 멤버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1-2로 분패했던 것을 보면, 다시 코리아 팀이 결성돼 브라질을 만날 경우 승리까지도 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남북 단일팀 가상 엔트리가 나오고 있다. '만약 한국의 박지성 박주영과 북한의 정대세 홍영조가 공격진을 이루고, 한국의 김정우 기성용과 북한의 지윤남 안영학이 중원을 지키며, 한국의 이영표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와 북한의 리광천 이준일 박철진이 번갈아 수비진에 포진했으면 어떤 팀이 됐을까' 하는 시나리오, 어떤가.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나. 한 달 만에 세계 8강이라. 남한이 월드컵에서 1승조차 못했던 시기였던 1990년에 그랬는데. 지금 단일팀을 구성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아무래도 뭉쳐야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