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아무리 많고 머무르는 곳이 아무리 좋아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미국에 온지 한달반 동안 참으로 여러 경험들로 안식년의 미국생활을 즐겼습니다. Athens의 한적한 딸네 집에 와서 아직 철부지 아이인줄 알았던 딸이 의젓한 주부가 되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크고, 나를 위해 준비해둔 2층 서재에서 울창한 숲을 마주하고 앉아 글을 쓰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고, 여러 대학이나 선교 본부, 연구소, 영성센터를 방문하여 견문을 넓히고 아이디어를 얻는 일도 즐거웠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는 일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유한 향료냄새가 싫지만 그래도 새로운 서양음식을 먹어 보는 일들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가서는 우리 교회에서 나를 도왔던 문재화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레이크렌드교회에 가서는 2번의 특별집회를 인도하는 즐거움도 가졌습니다.

그런 시간, 시간들이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밤잠을 설칠 만큼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잠시 잊었던 교회와 성도들이 더욱 더 보고 싶고 궁금하여 빨리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계획된 대로 14일 이른 새벽에 2시간을 달려서 오하이오 주도(州都)에 위치한 콜럼버스 공항으로 갔습니다. 9시 15분 발 AA4160을 타고 시카고로 가서 시카고 발 KAL(KE038)을 갈아타면 15일 오후 3시 5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내가 예약한 내 비행기 스케줄이었을 뿐이었고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시카고행 비행기(AA4160)가 시카고 기상(氣像)관계로 운항이 취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12시 35분 비행기(KE038)를 탈수 있도록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막막했습니다. 천재지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원망도 항의도 못하고 다시 KAL에 연락하여 겨우 금요일(18일)에야 갈 수 있는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했습니다. 돈만 있고 예약만 확실히 하면 예정한 날짜에 돌아갈 수 있으리란 내 계획은 순전히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고 나는 다시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려야 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순조로울 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스케줄을 만들고 약속을 잡아놓았지만 모두가 무위(無爲)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자기 인생을 자기가 마음대로 계획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로 규정하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못하는도다(약4:13-14)”라고 꾸중하지만 우린 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2시간을 자동차를 달려 딸네 집으로 돌아와서야 이것이 이번 안식년 휴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고 가장 큰 교훈임을 알았습니다. 미국에 와서 많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가지만 이제 곧 안식년이 끝나고 목회에 복귀할 때 목회를 위해 분명히 알고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과 아이디어와 지혜는 바로 ‘내 목회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해서는 않된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건계시이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라는 것(잠3:3)”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남은 목회를 나의 인간적인 지혜와 욕심에 근거한 내 계획대로 하지 말고“하나님의 스케줄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강력한 사건계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9년간 신양교회를 목회하면서 뭔가 이루어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지 내 공로가 아니었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회를 이토록 용의주도하게 간섭하시고 나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뭔가 안다고 내 생각으로 덤빌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하나님은 이토록 철저히 나를 제어하시면서 나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미국을 떠나기 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가장 큰 경험, 가장 큰 교훈을 가슴에 담고 벅찬 감격으로 여러분 곁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러분을 섬길 것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