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B조 조별리그 2차전 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우리나라 박주영 선수가 자책골을 넣었다. 주 공격수가 남의 문전이 아닌 자기 문전에 가서 골을 넣자 국민들의 탄식은 깊었다. 속이 많이 상한 일부 누리꾼은 박주영 선수 미니홈피에다가 “아니 골을 넣었는데 왜 기도 세리모니를 안 하는가” 이렇게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런 박주영 선수, 이번 나이지리아전에서 반전의 프리킥을 날렸다. 프리킥으로 골 넣기 참 힘든 공이 자블라니라고 하는데 기막히게 들어갔다.

사실 자책골은 모든 축구 선수로 하여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악몽거리이다. 사실 어떤 선수가 이기고 싶은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고 싶겠나. 하다 보니 발생한 실수 아니겠나.

그런데 이번 대회 들어 자책골을 넣은 경우가 더 있다. 지난 6월 14일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조별리그 E조 1차전 경기 때. 후반 1분 덴마크의 아게르는 동료가 헤딩으로 걷어낸 공이 자신의 등에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당한 상황을 맞았다.

선수들은 불만이 많다. 이번에도 자블라니 이야기인데, 이 자블라니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 수비수 다나카 마루쿠스 툴리오가 평가전 두 경기에서 연속 자책골을 넣었는데, 이걸 자블라니 탓으로 돌렸다. 이탈리아 공격수 잔파올로 파치니를 비롯해, 브라질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미국 골키퍼 마커스 하네만도 “예측할 수 없다” “끔찍하다”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그렇지만 월드컵과 자책골의 역사는 한 두 회의 인연이 아니다. 월드컵 사상 첫 자책골은 1938년 프랑스월드컵 때에 독일 전에 나선 스위스 선수의 발에서 비롯됐다. 이후 72년 동안 16개 대회에서 터진 자책골은 총 31개라고 한다.

○…자책골은 그 자체로도 비극인데, 비극을 이중으로 당한 경우도 있다. 십 수 년 전, 콜롬비아 선수 이야기이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우승후보로 꼽혔던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루마니아에 1-3으로 졌다. 위기에 몰린 콜롬비아, 두 번째 상대인 미국에게만은 꼭 이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전반 33분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허망하게 1-2로 패배를 당했다. 결국 콜롬비아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귀국한 에스코바르에게 4인조 강도가 총 12발을 쐈다. 콜롬비아 경찰이 85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범인을 색출했다. 잡고 보니 축구도박으로 거액을 날리고 살인을 사주한 목장주였다. 그런데 더 캐보니 콜롬비아 승리에 거액의 판돈을 걸었던 ‘축구 마피아’가 있었다. 자책골을 좀 넣었기로서니 사람을 죽이다니. 세계 축구팬들의 비난으로 콜롬비아는 한 때 몸살을 앓았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 일이다. 네덜란드 선수 한 명이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전반전 자책골을 넣었다. “큰 일 났다. 이러다 몰매 맞게 생겼다”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지? 후반전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뛴 끝에 참회의 만회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0:1에서 1:1 무승부로 만들었다. 한 경기에서 양 팀 모두에 득점한 유일한 선수가 된 셈인데.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준 경우가 됐다.

○…혹시 고의로 자책골을 넣은 선수도 있었을까. 있었다. 1998년 타이거컵 조별예선 최종전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경기였다. 전반전까지 0의 균형이 이어지다가 후반전 양 팀이 사이좋게 2점 씩 득점해 2:2가 됐다. 그러다 인저리 타임 때 ‘사고’가 터졌다. 갑자기 인도네시아 선수가 자기 편 골문으로 돌진하더니 슛을 날려서 골인시킨 것이다. 자책골이었다. 2:3 패배가 확정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당시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모두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다만 조 1,2위를 결정하는 경기였다. 그런데 서로 조 2위가 되고 싶었다. 왜냐. 조 1위를 하면 다른 조 2위인 베트남과 붙어야 하는데, 당시 베트남이 주최국이었다. 게다가 조 2위가 되면 만나게 될 다른 조 1위는 약체인 싱가포르였다. 두 팀 모두 싱가포르와 만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져야 했다. 그래서 막판에 인도네시아 선수가 ‘천금’같은 자책골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은 이건 ‘고의 패배’라며 용납하지 않았고 두 팀 모두에 벌금 4만 달러를 매겼다. 자책골 넣은 선수는 1년 간 출전 정지를 먹었다. 진정한 자책골을 넣은 것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2002년 마다가스카르 리그에서 있었던 일인데. 당시 한 팀이 0:149로 진 것이다. 농구에서도 있을 수 없는 점수 차인데, 어찌된 일일까. 149점을 먹은 팀의 실점 원인은 100% 자책골이었다. 선수들이 자기 문전으로 가서 149번 자책골을 날린 거다.

이런 황당한 경기는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앞서 있었던 경기에서 리그 심판들이 상대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심판들이 더 웃기다. 이 149점의 자책골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한편 한 경기에서 자책골을 세 골이나 넣은 선수의 기록도 눈길을 끈다. 벨기에 주필러리그 95~96시즌 제르미날 대 안더레흐트의 경기에서 제르미날 소속 스탄 반 덴 바위스가 겪은 비운이었다. 이 사람은 자책골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한 게임에서 세 골이나 실수의 슛을 날린 셈이다.

○…자책골, 1980년대 말까지는 자살골로 불렀다. 그러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의 고통을 감안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이라는 지적 때문에 이때부터 자책골로 부르고 있다. 자책골은 선수 본인의 자책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더 큰 슬럼프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덕망 높은 우리 국민 다수는 박주영 선수에게 비난 대신 격려를 보냈다. 워낙 크게 진 탓(대 아르헨티나전 1:4 패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격려는 멋진 프리킥 슛으로 돌아온 것이다.

□ 위 내용은 <위클리경향>, <스포츠동아>, <중앙일보> 기사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