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40년을 마치고 은퇴한 후에 맛들인 것 중의 하나가 축구 구경이다. 특별히 최근 6월 7월에는 남아공 월드컵에 푹 빠져 있다.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대부분 밤 11시나 새벽 3시경에 중계함으로 교회를 시무할 때는 감히 시청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새벽기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밤잠을 설치면 하루 왼종일 목회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시무할 때에 가장 압박을 주던 일이 설교였다. 그렇지 않겠는가? 똑같은 교인들에게 20년 30년을 설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내용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특별히 예화를 많이 사용하는 내 설교 스타일에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많은 예화집이나 CD를 구입하고 많은 독서를 통해서 좋은 예화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목회연한이 길어질수록 점점 압박감이 더해 가는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일주일동안 해야 될 설교가 얼마나 많은지? 그러다가 은퇴하고 나니까 무거운 큰 짐을 벗은 것 같다. 때로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할지라도, 엄청나게 저장된 설교내용 중에 해당된 본문을 중심한 설교문들을 발췌하여 한편의 설교로 편집만 해도 멋진 한 편이 될 수 있으니 부담이 없다.

그런 때문에 은퇴한 후에 엄청나게 주어진 것은 시간들이었다. 은퇴자들에게는 그 엄청난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수가 있다. 어떤 목회자는 일벌레였다. 그저 일생동안 교회에서 사역하는 재미가 유일한 취미로 보였다. 동기들이 바둑이나 여행, 스포츠 등으로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죄악시하는 경향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도 어쩔 수 없이 은퇴하게 되자, 시간들을 주체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어느 날부터 후임자에게 맡긴 교회 일에 사사건건 간섭함으로 교회가 시험에 들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청나게 주어진 시간들이 하나님이 주신 황금의 시간들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너무나 쉴 틈도 없이 달려옴으로 진력이 다 소진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틈틈이 쉴 수 있었던 월요일이나 휴가 때조차 원고를 쓰는 일에 매일 정도였다. 그러한 때에 비하면 지금은 하루 왼종일 빈둥거린다 한들 누구 하나 간섭하는 자들이 없을뿐더러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가책이 없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그 시간들을 활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은퇴한 후에 주로 하는 사역은 ‘크리스천웹진 소리’에 많은 분들의 글이나 한국교회의 소식들,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한 제언들을 글로 싣고 편집하는 일들이다. 운영자금이 넉넉하다면 사무실도 개설하고 몇 명의 기자도 채용함으로 ‘소리’지(誌)가 더 활성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 나마라고 꾸준히 운영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런 사역들을 하는 틈틈이 자연스럽게 많은 책들을 읽게 된다. 과거에는 주로 설교나 특강을 염두에 두거나 청탁받은 원고를 중심으로 독서를 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지금은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책을 읽는다. 어느 때는 그동안 읽지 못했던 역사서를 읽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인터넷에서 다운받는 ‘전자책’에서 찾은 10권으로 된 장편소설을 읽노라고 자정을 넘기기도 했다. 또 하나의 취미는 바둑이다. 그렇다고 같이 뛸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바둑 CD를 상대로 시합을 하는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바둑 TV를 통해서 생중계하는 고수들의 바둑을 관전하는 시간은 너무나 흥미롭다. 한국바둑의 기둥인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등의 시합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한국바둑의 유망주인 강동윤, 김지석, 박정환 등의 현란한 공격과 수비술을 보면서 여러 시간에 매여 있기도 한다. 금년들어서 한국바둑의 고수들이 중국바둑의 고수들에게 연패함으로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창호에 이어서 한국 바둑의 자존심 노릇을 맡은 이세돌 9단이 최근 후지스배 결승에서 중국의 콩지에 9단에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빠지기도 했다. 여하튼 틈틈이 ‘타이젬(Tygem)’을 통해서 바둑계 뉴스나 고수들의 기보를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또 하나의 취미를 소개한다면 축구 관전이다. 은퇴한 후에 가장 즐겨보는 축구는 유럽 리그전이다. 시무 때는 유럽 축구에 대한 상식은 고작해야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트’ 선수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은퇴한 후에 한 밤중에 박지성이 출전하는 축구를 보면서 차츰 유럽 축구에 대해서 상식이 깊어가게 되었다. 유럽축구하면 크게는 크게 5가지 정도로,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가, 네덜란드의 에레디비지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유럽 리그에서 우수한 팀들로 먼저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보시면 최고팀을 꼽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날, 첼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보면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데포르티보, 발렌시아, 독일 분데리스가는 바이에른 뮌헨, 샬케, 브레멘, 레버쿠젠, 이탈리아 세리에A로는 유벤투스, AS로마, 인터밀란, AC밀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럽 리그 마당에서 많은 축구 스타들이 화려한 묘기를 발휘할 때 밤을 지새우는 맛에 빠지게 한다. 루니, 호날드. 메시, 호나유지누, 카카, 로벤, 비야, 클로제, 뮐러, 스네이더르, 등등.

그런 스타들 틈에 박지성과 박주영, 이청룡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더욱이나 6월부터 시작된 월드컵은 나의 밤 세계를 깨워 잠 못 들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월드컵을 경험했지만, 목회사역 때문에 제대로 관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6월, 7월은 밤중이나 새벽이나 관계없이 축구 구경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물론, 16강까지 진출한 한국 축구를 조바심치며 관전한 것은 물론이다. 특별히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은 너무나 아쉬운 시합이었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

2-1로 지고도 가슴이 뿌듯할 정도로 우리 한국 축구 수준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이 귀국한 후에도 여전히 8강전, 4강전에 매인 채 7월의 밤과 새벽은 잠 못들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러한 관전 행진은 결승에 오른 네델란드와 스페인과의 한판 혈투가 끝나야 멈출 것이다. 7월 12일 결승전 참으로 기대가 된다. 그날이 지나야 다시금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무튼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함으로 한국 축구가 8강, 4강까지 이르는 날을 볼 수 있었으면 노년이 되어가는 우리 세대들에게도 기(氣)가 팍팍 오를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