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있는 그대로 풀이하면 ‘어두운 여행’이 된다. 재난 현장이나 참상지 같은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방문하는 여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2차 대전 중 유대인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장소인데. 생체실험실 고문실 가스실 처형대 화장터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낡은 신발과 옷가지,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이 담긴 거대한 유리관은 지금도 찾아 온 이들을 전율케 하고 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입구에 가 보면 볼 수 있는 ‘노동은 너에게 자유를 준다’라는 현판이 참 인상적이다. 이 현판이 지난 연말에 도난당했다가 다시 찾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생각해보자. 노동을 해야만 자유를 준다는 문구, 얼마나 기만적인가. 이 혐오감 때문에 독일에서는 금기시된다. 그런데 얼마 전 독일의 한 방송 아나운서가 이 문장으로 농담을 한 일이 있었다. 악의성은 없었다. 하지만 비난을 사더니 결국 해고됐다. 나치의 잔학상은 지금도 독일인을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어떻게 단장하는 게 좋은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모두 공개했을 때 발생할 역효과를 우려했던 것이다. 숱한 논쟁 끝에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공개하자”는 합의점이 형성됐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 모습이 어느 것보다 뛰어난 교훈"이라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중요한 것은 건물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세계인들의 양심 속에 오랫동안 깊이 심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독일 초등학생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고 있다.

아우슈비츠는 반세기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9.11테러라는 최근 발생한 비극을 추념하고 기념하는 공간도 건립되고 있다. 사건 발생지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 박물관이 들어선다. 설계 내용에는, 피랍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처음 충돌했던 시간부터 두 번째 건물이 무너진 시간까지 총 102분 동안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공사가 진행 중인 요즘도 하루 수천 명 씩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새 무역센터로 건립되고 있는 '프리덤 타워'와 함께 박물관이 완공되면 연 700여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폴란드 미국 외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의 히로시마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도 유명한 비극 관광지이다.

우리나라도 따지고 보면 비극의 현장이 참 많다. 1948년 수만 명의 양민이 희생된 4·3사건의 실상을 알려주는 제주 4·3평화공원,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중공군 포로를 가두기 위해 설치된 거제포로수용소,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추모하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일제의 잔학상을 재현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대표적이다.

비단 비극 뿐 아니라 행정 실패의 경험마저 다크 투어리즘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동쪽에 유바리시라는 내륙산간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쇠락해가는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관광 시설 조성에 많은 투자를 했다. 1990년대부터는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과다한 투자가 화를 불렀다. 유바리시는 2006년 6월 360억 엔의 빚을 지고 파산했다. 그 때 공무원의 임금을 줄이고 구조조정도 하고, 각종 시설물을 처분하며 공공요금도 인상하고, 복지 예산을 크게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일까. 유바리시는 도시의 몰락 그 자체를 관광 상품화했다. 이른바 '유바리 다큐멘터리 투어'. 이 투어에 참여해 가보면 유바리 시장과 시청의 전`현직 간부들은 도시가 몰락한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도시의 명소인 석탄역사촌, 탄광생활관, 시립미술관, 영화관을 관광하게 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의 외환위기 역시 하나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외환위기로 매각된 건물도 돌아보고, 서울역 노숙 현장도 살펴보고 말이다.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은 2000년 영국의 말콤 폴리와 존 레넌 교수가 같이 쓴 책의 이름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다크 투어리즘은 단순한 테마여행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취지를 살리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듣고 있다.

이렇게 각광 받는 다크 투어리즘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 번째로는 예산 문제이다. 각광 받는 다크 투어리즘의 목적지가 되기 위해서는 넉넉한 부지 확보와 정밀한 복원부터 다양한 교육을 위한 기념관과 박물관 설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누군가 의지를 갖고, 주민 동의를 얻으며 추진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로는 아픈 과거를 들춘다는 점이다. 직접 겪지 않고서는 그 슬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유족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그 역사를 재현한다? 정서적으로 용인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비극의 현장을 역사 교훈의 장으로 허락한 유족에게도 감사의 뜻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단체방문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자녀와 함께 찾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아지는 추세란다. 비극의 현장은 스토리를 갖춘 관광자원이자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여름휴가지 부근에 이런 곳이 있으면 짬을 내서 둘러볼 일이다. 관광도 문화이다. 문화는 또한 성찰의 산물이다. ‘생각하는 여행’ 이번 여름에 설계해보면 어떨까?

□ 참고 자료

-매일신문 2010. 2. 3자 “[데스크칼럼] 다크 투어리즘…역발상의 미학”
-경향신문 2009. 12. 24자 “[여적] 다크 투어리즘“
-한국경제신문 2010. 7. 7자 “[천자칼럼] 다크 투어리즘 (Dark Tourism)”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단체방문 위주였으나
-에디터그룹 스마일써니 http://blog.besunny.com “과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