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사회’ 또는 ‘방관자 사회’. ‘Bystander effect’이라는 공식 명칭이면 다 통하는 말이다.

긴 설명 대신 일화를 소개한다. 한 청년이 10대들에게 몰매를 맞는 현장에 10여명의 성인이 있었으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범행 현장은 어느 으슥한 골목이 아니다. 사람이 붐비는 서울 잠실동 먹자골목이었다. 당연히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폭행을 제지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 청년은 한동안 방치됐다가 119에 실려 갔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졌다.

사례 하나 더. 부산시내 한 골목길에서 고등학교 1학년인 여학생이 치한에 끌려가면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한 동네 주민이 밖으로 나와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내 그냥 들어가 버렸다. 이 여학생은 계속 소리쳤다. 하지만 더는 내다보는 주민이 없었다. 이 여학생, 결국 성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초등학생 딸 가진 부모를 놀라게 했던 김수철의 범행은 어떤가. 대낮 학교에서 초등학생이 납치돼 범행 장소까지 무려 600여m를 눈이 감긴 채 끌려간 사건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괴기 영화 한 편 같은 이런 현상, 그 수가 갈수록 크게 늘고 있다. 도시화로 인해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면서, 이웃이나 공동체를 나와 같은 운명체로 여기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탁 까놓고 이야기해서 ‘괜히 남의 일 끼어들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하는 태도이다.

'중국의 마작 노인 사망 동영상'도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동영상은 마작을 즐기던 70대 노인이 쓰러져 숨져가는 데도 도박장 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마작을 계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화 ‘에코’의 배경이 된 실화도 소개한다. '제노비스 신드롬'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30여 년 전 미국에서 발생했다. 비극의 주인공인 여성은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귀가하다가 강도를 만났다. 성폭행을 하려고 덤비는 강도를 향해 이 여성은 소리를 질러댔다. 놀란 강도는 도망갔다. 이때 38명이나 비명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비명이 공기 속에서 흩어진 뒤에는 이 여성을 구해주려 나타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강도는 다시 돌아와 이 여성을 폭행했다. 그리고 살해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이채로운 해석이 있다. 통상 ‘비명을 들은 사람 모두가 비겁해서 그렇다’라는 ‘전통적 결론’에서 한 차원 더 나간 풀이이다. “많은 사람이 비명을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져 방관자로 변한다는 설명이다. '나 말고 누가 신고하겠지' 이런 심리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달리와 라타네가 한 생각이다. 이걸 두고 학자들은 '책임감 분산' 이론으로 이름붙였다.

몇 년 전 독일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연구팀은 공공장소에서의 '방관자 효과' 노상실험을 했다. 이를 소개한 기사는 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경꾼 수가 많을수록 방관자 효과가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피해자의 위험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는 겨우 6%만이 싸움에 관여할 정도로 소극적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듯, 괜히 나서봐야 손해만 본다는 심리가 만연한 세상, 이러다는 시민의식이란 건 완전히 실종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신고하면 손해 본다’가 아니라 ‘이익이 있다’는 식으로 의식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의인들에 대한 예우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1970년 이후 정부 인정 의사상자(義死傷者)는 576명으로, 이 중 385명이 남을 돕다가 숨졌다는 통계도 있다. 적지 않은 것이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교육을 통해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신고 인센티브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통상 경찰이 첫 번째 신고에만 가치를 두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신고에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신고 들어 왔습니다”라며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은 ‘내가 다시는 신고하나 봐라’라는 반발심만 불러온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신문을 보니까 10대 3명이 성추행범을 추격해 붙잡았다는 소식이 있다. 이 성추행범 몸무게가 꽤 되는데도 말이다. 이런 학생들, 명문대 입학사정관들이 당장 입학 결정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 치기 어릴까.

비단 범죄신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방관자적 자세를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괜히 나서봐야 소용없다’며 조직 전체에 배정된 일을 서로 눈치 보며 미룬다던지, ‘똑똑한 사람들 해보라’는 식으로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던지, ‘나는 모르는 일이야’ 이러며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던지 하는 태도가 그 예이다.

평소 안면이 있는 이웃이 당했다면, 늘 가까이 지내는 동료의 일이라면, 마냥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칠 때 나누는 따뜻한 인사 한 마디는 아무리 강고한 콘크리트 벽이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마저 단절시키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인용한 자료

세계일보 2010. 7. 13자 "[설왕설래] 무관심 사회"
중앙일보 2010. 7. 12자 "누군가 신고하겠지 … 살인 눈감은 ‘방관자 효과’"
한국경제신문 2005. 12. 8자 "[천자칼럼] 방관자"
서울신문 2010. 3. 16자 "[객원칼럼] 국가적 쟁점과 방관자 효과/정인학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