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동석했던 여대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물의를 빚은 말 가운데에는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래 희망이 아나운서라는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은 “특정 직업인이 성접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강용석 의원은 펄쩍 뛴다. “정치 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며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 자리에 있었던 연세대학교 토론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은 "성희롱 발언들은 실제로 있었다"며 "그래놓고 기자회견에서 ‘그런 말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하니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라며 강용석 의원의 부인에 일침을 가했다.

발언 내용이 사실 쪽으로 쏠리면서 아나운서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는 강용석 의원의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서울남부지검에 냈다.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비하 발언,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는 2004년 12월, 자신의 블로그에다 “인생의 쓴 맛 한 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다”며 여성 아나운서를 비하했다. KBS와 시간대, 프로그램 성격을 언급한 것으로 봤을 때, 특정 아나운서를 지목한 게 분명했다. 그러자 KBS의 여성 아나운서 33명은 고소했고, 문제의 문 기자는 벌금 2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사례는 또 있다. 30대 보수논객으로서 지난해 한나라당 미디어발전특위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변희재 씨의 경우이다. 2008년 촛불국면부터 변희재 씨는 일부 MBC 아나운서들이 문화방송 노조 등의 정치 투쟁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액면 상으로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곤란한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을 못하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변희재 씨는 이보다 앞선 2004년에는 “여기자가 인터뷰를 조건으로 매니저에게 성상납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사과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이들부터 여성 아나운서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아나운서는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종이다. 학력과 재능, 명성뿐인가. 외모까지 두루 갖춰야 입문이 가능한 직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저한 자기 관리, 치열한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일자리가 바로 아나운서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브라운관을 통해 받은 시청자들의 환호,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스타로 부상해 프리랜서로 전향한 방송인의 화려한 성공과 수입, 그리고 일부 매체에서 보도되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조건 좋은 남자들과의 결혼으로 인한 신분상승의 징검다리라는 허울 때문이다. 그러나 외형만을 좇는 지각없는 여성 방송인이 방송 현장에서 몇이나 존재하며, 있다고 한들 얼마나 오랫동안 카메라 앞에 모습을 비추고 있는지는 짚어볼 대목이다.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인식 변화. 이를 위해서는 그 직종 당사자들의 노력도 절실하다는 평이 나온다. 사실 요즘 한국의 여성 아나운서는 준 연예인 취급을 받는다. 일본에서 건너온 풍토이다. 그 나라에서는 아나운서를 ‘방송탤런트’ 혹은 ‘예능인’으로 부른다. 그래서 1990년대에는 아나운서와 아이돌(Idol)을 합성한 말인 ‘아나도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반면 영국 BBC나 독일 제1공영방송 ARD 같은 외국 방송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노련한 여성 중견 아나운서들이 맹활약한다. 유럽 TV에서 임신한 기상 통보관과 리포터들이 맹활약 하는 모습도 더러 볼 수 있다. 기혼 여성이 메인 앵커로 발탁된 경우도 있다. 바버라 월터스가 그 경우인데, 1976년, 45살 나이로 미국 ABC방송의 앵커가 된 기록을 남겼다.

사실 한국 방송역사에 있어 첫 번째 공식 여성 아나운서도 기혼여성이었다. 이옥경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옥경 씨는 1926년 7월 조선어방송 JODK의 첫 번째 아나운서로 채용됐다. 그 이전까지는 남편인 노창성 엔지니어가 마이크 앞에서 잔뜩 긴장한 어투로 “여기는 체신국의 시험방송실이올시다. 지금은 시험방송중이올시다”라고 방송했었다. 오죽 어색했을까. 방송사 측은 하는 수 없이 여성 방송요원을 뽑게 됐는데, 노창성 씨는 이때 아내를 꼬드겨 방송사에 취업하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 방송역사에 있어 첫 번째 여성 앵커는 누구였을까? 바버라 월터스가 출현하던 해, KBS 앵커가 된 박찬숙 한나라당 전 의원이었다. 당시 31살 나이였다. 그러나 그 뒤로 우리나라 방송에서 여성 앵커는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된데다 교체도 잦았다. 실력과는 무관하게 젊고 예쁜 외모의 소유자만 찾기도 했다. 현직 여성 앵커들 사이에선 한 때 “더 젊고 더 예쁜 여자 후배들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주름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기록을 언급한 김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앵커직을 수행하는 여성 방송인이 누구인지도 살펴보겠다. 39년 동안 북한 방송원으로 활약하는 리춘희 씨이다. 이미 정년을 10년이나 넘긴 65세지만 여전히 근엄한 목소리로 북한 당국의 주요 성명과 발표문을 전달하고 있다. 혼자 45분 동안 속사포처럼 방송한 기록도 있다. 그만큼 북한 당국의 신임이 두텁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리춘희 씨에 대한 북한 당국의 예우도 대단하다. 집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하사한 양주, 생선 통조림 등 고급 수입품이 진열돼 있다고 한다. 또 평양 최고의 미용실인 창광원에서 무료로 머리를 손질하고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다고도 하고. 또 평양 피복연구소가 만든 최신 유행의 옷을 무료 또는 염가로 제공받기도 한단다. )

'여성 방송인, 특히 아나운서들은 어떤 분야든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터무니없는 비하 논리가 틈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성 아나운서 누군가가 견실한 자기 관리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성, 식지 않는 열정으로써 리춘희 씨의 기록을 깼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 인용 자료

한국경제 2010. 7. 23자 "[천자칼럼] 말실수"
한국일보 2006. 9. 22자 "[지평선] 노현정 파문"
국민일보 1998. 7. 29자 "여 아나운서들 ‘빛과 그늘"
한국일보 2006. 9. 1자 "아나운서 '정체성 위기' 그들의 변신은 무죄인가"
한겨레 2006. 4. 26자 "[유레카] 여성 앵커 / 김종철"
마이데일리 2007. 11. 13 "노현정과 아나운서의 재벌교제 언급의 파급은?"
마이데일리 2008. 11. 9 "아나운서 경쟁률 1,926대1의 두얼굴"
위클리경향 2008. 5. 8 "[북한읽기] 유명 아나운서는 ‘귀하신 몸"
이내수 저 '이야기방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