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집계 결과, 올해 휴가 출발 날짜가 집중되는 시기는 직장과 학원의 휴가 기간이 몰리는 오는 토요일(31일)부터 다음 주 금요일(8월 6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휴가철의 절정이라 하겠다. 올 휴가철, 번잡함을 피해 집에 머물며 독서할 분들,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여름 휴가에도 몇 권의 책을 지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넛지(Nudge)’를 비롯해 4권의 책을 가져갔다고 한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는 뜻의 ‘넛지’라는 제목의 책은 작은 변화로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담 이다만, 출판계에서는 갸우뚱했다. 대통령이 주목한 책 치고는 중량감이 없다는 지적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바쁘게 살아온 CEO 출신답게 달리는 차 속에서 30여 분 만에 책 한 권을 뚝딱 해치우는 속독파라고 한다. 필요한 때 필요한 책만 골라 읽는 실용 독서가라는 이야기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이 밝힌 내용이다.

그 최진 소장이 대통령별 독서 스타일을 연구한 책 ‘대통령의 독서법’을 냈다. 이 책의 내용을 보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읽고는 “이 사람은 전쟁영웅이 아니라 도로망과 수로 개발에 성공한 국가 경영자”라고 평가한 부분이 있다.

한편 최진 소장은 책을 현실 정치에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한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는데. 재임 5년 동안 국무회의 같은 공식석상에서 50여 권의 책을 추천하고 저자를 정부 요직에 중용해 ‘독서 정치’라는 신조어를 낳은 주인공이라고 소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려 2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면서 투옥 중일 때엔 일주일에 평균 10권이 넘는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다독가 중의 다독가라는 이야기이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측근이 메모해준 내용을 읽음으로써 독서를 대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 때문일까. 5공 시절에는 “책 절대 안 읽는 정치인”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본인은 ‘5공의 민주인사 마타도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최진 소장은 유명한 국외 지도자의 독서 습관도 소개했는데, 추려보면 이렇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의회도서관으로 달려가 군사전략서를 보고, 남북전쟁 와중에 책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전쟁터의 욕조와 화장실에서조차 책장을 넘겼다. 나폴레옹·케네디·클린턴 같은 성공한 지도자들은 한 결같이 가장 바쁜 재임 중에 책을 많이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휴가철에 가서 한 권 읽기도 쉽지 않은데, 서너 권 씩 읽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는 이들도 꽤 있다. 일본의 소노 요시히로 씨는 "하루에 책 한 권 읽는 것 쉽죠. 6시간에 20권을 읽은 적도 있어요. 1년에 읽는 책은 500권정도 됩니다"라고 말해 이목을 끌고 있다. 천부적인 독서 기질이 따로 있다는 것일까. 아니다. 어렸을 때는 요시히로 씨는 난독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다 서른한 살에 '정상적으로' 책을 읽게 됐다고 한다. 비결이 궁금할 것이다. 속독일까? 아니다.

이 분이 최근에 ‘1년에 500권 마법의 책읽기’라는 제목의 독서법 관련 서적을 냈다. 요약해보면, 우선 책을 읽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책을 읽는지 목적을 뚜렷하게 세우라는 이야기다. 목적이 확실해야 뇌 처리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보상'을 설정해두는 것도 조언한다. 예컨대 '이번 일이 끝나면 뭘 사먹으러 가야지' 이런 보상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좋다는 이야기이다.

읽는 방법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책과 인사하라는 것이다. 어느 한 문장 아니라 한 단어만 보더라도 3초마다 한 번씩 책을 넘기고 그런 다음,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나가라는 것이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은 두 번째 봤을 때 이해하기 쉽다는 논리다. 이렇게 하지 않고 처음부터 정독하게 되면 머리에 남는 게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조언을 나도 대학원 교수에게 지도받았다. 거짓말 같지만 이틀 만에 장자를 완독했다.

신문마다 휴가철 추천도서가 많이 소개되던데. 올해도 여기저기서 많이 거론된다. 독서교육 교사들의 모임인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은 방학을 맞는 학생들을 위해 총 25종류를 추천했다.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과 사락 윅스의 ‘기억의 빈자리’가 이 가운데 꼽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3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구글노믹스’, ‘메가트렌드 차이나’를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14선을 선정했다.

책 판매점들도 이 여름철 대목을 놓칠 수 없다. 교보문고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알렉산드르 보파의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를,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소설가 김탁환 씨와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함께 써 화제를 모은 ‘눈먼 시계공’,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걸고 하늘을 건너간 곡예사 필리프 프티의 실화를 소재로 한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를 추천했다.

국립중앙도서관도 일반인들을 위해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80선’을 선정·발표했는데 구설수를 낳고 있다. [관련링크] 논란을 지핀 사람은 소설가 장정일 씨다. “그 목록을 보는 순간, 방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 도무지 내가 읽고 싶거나 지인에게 권할 만한 책보다, 외면하거나 말리고 싶은 책이 대부분이다”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누리꾼들이 달아 놓은 댓글에도 ‘미치겠다, 이걸 추천이라고’, ‘정말 놀랍군요, 어이가 없다’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남의 도서 추천은 나의 취향과 지성의 깊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휴가철 독서는 밀린 숙제가 아니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 하는 이에게 좋은 책을 접할 안목이 좀 더 생긴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다.

■ 인용자료

중앙선데이 2010년 7월 25일자 “지난해엔 ‘넛지’ 읽은 이명박 대통령 올해는?”
세계일보 2010년 7월 11일자 “휴가철 추천도서 여기 있소!”
매일경제 2010년 7월 23일자 “빨리 읽고도 다 이해하고 싶다면…”
한겨레 2010년 7월 17일자 “[장정일의 책속 이슈] ‘나쁜 책’을 권해도 무방한 계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