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분천중앙교회 청년 봉사 현장을 방문하고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 서로 도우며 공부했던 친구들이지만 각자가 자기 삶에 바빠서 소원했던 친구들입니다. 친구가 섬기는 교회 주일예배 설교를 부탁받고 주말을 같이 보내면서 인근지역인 안동, 대구, 봉화, 영주, 예천, 등지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전화로 불러 모았습니다. 목사로 교회를 섬기는 종종 만나는 친구도 있었고 학교 졸업 후 수십 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격의 없고 친근한 만남이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어렵게 공부하든 시절의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로 공감대를 이루어 우린 금방 그 허름했던 기숙사 생활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청량산 밑 깊은 산속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장로로 교회를 섬기는 한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인근 지역의 박물관, 문학관 그리고 유적지를 방문하다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과 마을 식당에 간 친구에게 동행한 다른 친구가 핸드폰으로 “서울에서 이만규 목사가 자네를 만나러 왔다”고 연락을 하고 그 식당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몇 분의 마을 어른들과 나무그늘에 펴 놓은 평상(平床)에 앉아서 긴장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얼굴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 채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쉽게 그 친구를 알아보았고 그 친구 역시 잠간 어리둥절했지만 쉽게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손을 잡았습니다.

나중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서로 만나지는 못했어도 그 친구는 나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도되는 교단신문이나 여러 매체를 통하여 나의 활동에 대하여 알고 있었고 우리 교회에 대하여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멋진 정장 차림으로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찾아와 거리감을 느낄 그런 모습으로 차에서 내릴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름한 옷차림과 운동화를 신고 옛날 그 모습과 표정으로 찾아온 나를 보면서 너무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허름한 옷차림과 격의 없는 나를 “하나도 안 변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도시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의 거만한 태도에 비해 “하나도 변하지 않은”내가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역시 우린 금방 옛날이야기로 돌아갔고 좋은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자신이 섬기는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깊은 신뢰와 긍지를 가진 행복한 농사꾼으로서의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옛말에는 “옷 잘 입은 거지가 동냥도 잘한다”고 했지만 나는 옷 못 입은 덕으로 환대를 받고 민물매운탕으로 점심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옷차림(行色)은 신분의 상징입니다. 왕이 입는 옷(왕복)이 다르고 대신들의 옷이 다르고 평민들의 옷이 달랐습니다. 양반의 옷이 다르고 상민의 옷이 달랐습니다. 옷은 인격이나 신분의 상징입니다. 옷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예절(마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위상이 높을수록 그를 만나는 사람의 옷차림도 정중합니다. 구약성경에 제사장들이 입었던 옷의 화려함은 제사장의 신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정중함의 표현이었고 오늘날 목사 가운을 비롯한 각종 성의(聖衣)역시 하나님께 대한 정중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어야 하고 정중한 옷차림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정중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옷차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중함입니다. 어떤 옷을 입든지, 어떤 태도를 취하든지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허름하고 남루한 옷을 입고 남을 대하는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때론 정중한 옷차림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옷차림이 아니라 마음이 태도입니다. 우리는 늘 남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정중한 태도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정중한 태도는 남을 깊이 이해(Understand)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 위해서는 늘 그의 아래(Under)서야(stand) 합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