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중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이번 청문회를 보며 많은 분들이 낙담하는 모습을 봤다. 발뺌하기 힘들 정도로 확실히 잘못이 드러난 경우만 마지못해 잘못을 시인했을 뿐 의혹을 어물쩍 넘기려는 태도가 한결같기 때문이다.

‘이런 청문회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안 가질 수 없다. 아무리 비위를 들추고 추궁해도 대통령이 ‘괜찮다’라고 하면 의미가 없다면 말이다. 청문회는 어느새 ‘옥석을 가리는 장’에서 ‘통과의례’로 변질돼 버렸다. 도덕성이 그렇게도 개의치 않아도 될 문제라면, 뭐 하러 청문회를 열어서 곧 일할 사람에게 생채기를 내야할까.

그래서 궁금한 게 다른 나라의 청문회는 어떻게 운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청문회의 나라’ 미국의 예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장관들이 취임 전에 상원 해당 상임위에서 대략 이틀에 걸쳐 철저한 검증을 받는다. 고위공직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언행 불일치는 없었는지, 국가발전을 위한 비전은 있는지, 우리가 하는 식으로 한다.

기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는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를 흉내 낸 것이다. 미국에선 차관보 이상 고위직과 대사, 장성 등 1000여 명이 청문회 대상이고 수시로 청문회가 열린다. 대통령은 상원의원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이 내정한 공직 후보자를 임명할 수 없다. 우리 청문회는 대상이 국무총리와 장관 등 57명이다. 그나마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대상은 절반도 안 되는 23명이다.

그래도 장관까지 모두 청문 대상에 포함시킨 점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엔 한나라당의 혁혁한 공이 있었다. 한나라당은 2005년 개각 파문 당시 교육부총리에 임명된 이기준 씨의 부적격성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청와대가 인사검증시스템의 문제점을 시인하자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하라고 압박했다. 물론 대통령이 ‘그래도 괜찮다’라고 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국회의원과 국민의 검증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그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하겠다. 물론 그런 한나라당이 여당이 된 지금도 그 때 그 노력을 뿌듯해할지는 알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인사 외에도 정책 관련한 청문회가 보편적이다. 회기 중엔 하루 수 십 건에 달한다. 상임위원회나 소위원회별로 현안에 관한 청문회가 개최되면 이해당사자들과 정부 관리, 시민단체 대표, 각계 전문가가 출석해 증언한다. 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밝히거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이 된다. 법률 제정 또 개정을 앞두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검증 절차이자 정책 개발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대정부 질문이 없다. 청문회로 대신 그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고위 관리를 직접 불러 정책 현안에 관해 묻고 답변을 듣는다. 보고서나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차관보급 이상 고위직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의회의 주요 기능 중 하나다. 한마디로 청문회는 의정활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청문회는 의회 전문 케이블 방송, 우리로 말하자면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된다.

이런 청문회를 계기로 쫓겨난 대통령도 있었다.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로 온 나라에 큰 소용돌이가 일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이듬해 탄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엔 대량 리콜 사태로 위기에 처한 도요타자동차 경영진이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에선 청문회가 자질과 정책을 묻는 자리인데, 우린 도덕성 시비에 매몰됐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지난달 엘리나 케이건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청문회를 봐도 총기 소지, 낙태, 동성애자 군입대 같은 사회적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부동산이 얼마냐, 세금 탈루는 없었느냐, 생활비는 얼마냐 따위의 질문은 없었다.

정말 그렇다면 미국 의회는 공직자의 사생활에 대해서 적절성을 따지지 조차 않으며 ‘스킵’하는 것일까? 천만에 말씀이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표절 같은 사생활에 얽힌 위법 의혹은 청문회에서 검증하지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것은 이미 사전에 다 걸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르지도 않고 흠은 흠대로 둔 채 청문회에 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후보자들, 미국에서는 공직 후보자로서 ‘깜’도 안 되는 자들인 셈이다.

그런 미국이지만, 여기도 청문회 통과하지 못하는 후보자도 많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언론에 자주 이름이 회자되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이 사람도 과거 자신이 설립한 연구소인 신미국안보센터 후원금 모금 과정에 대한 의혹 때문에 행정부 스스로가 인준 요청을 몇 달이나 늦췄다.

미국 청문회의 ‘제 맛’은 역시 ‘충분한 검증 기간’이다. 우리처럼 임명한 지 2주일 안에, 마치 무슨 범죄사실이 더 드러날까 두려워 서둘러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5월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을 받고, 8월에 청문회를 거쳐 임명됐다.

사실 도덕군자만 공직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17번 부동산 거래를 하고, 5번이나 위장전입하고, 쪽방촌을 사들이고, 공무원을 자기 하수인 쓰는 이런 공직 후보자들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한 퇴행적인 삶은 용인하기 어렵다. 어떻게 할 것인가. 본인들은 미동도 안 하고 있다. 그저 ‘사과’ ‘불찰’이라는 단어를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다. ‘엉망인 나라꼴’을 지적하는 시중의 탄식도 깊어간다.

□ 인용 자료

<한겨레> 2010. 8. 25자 “[사설] ‘불찰 총리’와 ‘죄송 문화부장관’을 임명하려는가”
<한겨레> 2010. 8. 25자 “[유레카] 인사검증 기준 / 권태선”
<한겨레> 2010. 8. 20자 “[특파원칼럼] 미국은 청문회에서 정책만 묻는다? / 권태호”
<헤럴드경제> 2010. 8. 20자 “<인사청문회 D-1>미국은 생산적 정책토론의 장”
<세계일보> 2010. 2. 25자 “[설왕설래] 도요타 청문회”
<서울신문> 2006. 1. 11자 “[씨줄날줄] 인사청문회 / 한종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