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되자마자 귀향하는 열차표 예매 뉴스로 추석명절이야기가 시작되더니 아직 과일들이가 채 익기도 전에 성큼 추석명절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고향이 생각나고 그리운 때가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는 추석은 ‘고향 가는 날’이 되어 버렸고 추석에도 찾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을 벌써부터 쓸쓸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추석엔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이젠 연로하신 형수님 혼자서 고향을 지켜주실 뿐,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동네도 많이 바뀌어 어릴적 추억이라곤 뒷골 언덕에 늙어 고목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 뿐이지만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주일이나 수요일 예배가 걸려서 추석에 고향을 찾은 기억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추석을 맞을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고, 이미 변해 버렸지만 그러나 따뜻했던 고향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사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귀소본능(歸巢本能)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 추억이 있고, 거기에 나를 키워준 산하(山河)가 있고, 뛰놀던 들녘이 있고, 사랑받고 사랑했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도 산골 “사계”라는 작은 촌락입니다. 행정적주소는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이지만 사람들은 흔히들 우리 동네를 “대룡산”이라고 불렀고 저는 대룡산 중에서도 “사계”라는 띄엄띄엄 집이 몇 채가 있는 산골 출신이었습니다. 그 동네가 조선시대에는 “순흥군 대룡산면 사계리”였기에 지금까지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고 교회가 있는 큰 마을에 갈 때는 늘 무슨 대도시라도 가는 것 같은 흥분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 유교 가정의 6형제나 되는 완고한 시어른들을 모신 집안의 종부(宗婦)로서 유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난이고 견디기 어려운 어려움이었지만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결의를 가진 어머님의 신앙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이 든든했습니다. 거의 2Km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룡산교회”를 주일은 물론 수요일, 그리고 새벽시간 조차도 어린 나를 데리고 겨울이면 눈 내린 미끄러운 산길을, 여름이면 이슬로 젖어있는 풀섶을 헤치며 다니셨고 철없던 저 역시 당연한 매일의 일과로 알고 따라다녔습니다. 사실 제가 추석을 맞을 때마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어머님에 대한 추억 때문입니다.

근본주의 신앙에 가까운 어머님은 어떤 경우에서도 제사상(祭祀床)에 절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제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 참석은 하지만 절대로 절(敬拜)을 해서는 안된다며 어린 나에게 절을 피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사의식을 할 때 반드시 제관(祭官)들 중 가장 뒤에 설 것이며 꼭 엎드려 절하는 시늉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마음에는 예수님 생각하고 엎드려 기도하라”라는 것이 어머님의 당부였습니다. 저도, 저의 동생도, 조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젠 어머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새벽기도를 다니든 산길도 없어졌지만 그래도 저는 추석을 맞을 때마다 어머님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고향이 그리워지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힘써 믿음을 지키고 우상 숭배를 그렇게 경계하시며 쌓아주신 축복을 지금 제가 누리고 있다는 감사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추석은 어머님께 대한 그리움과 어머님에 대한 감사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제 곧 추석 귀향행렬이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고향에의 그리움과 추억을 안고 고향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추석이나 명절 때 꼭 고향으로 가서 소원(疏遠)했던 형제들과 이웃, 친척들을 만나고 고향교회에 마음을 담아 헌금을 드리고 고향을 지키시는 목사님을 찾아 위로하고 돌아오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추석이 “조상에게 차례(茶禮) 지내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지켜서 추석을 “기독교 명절”로 만들자고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가문의 신앙의 뿌리를 찾고 신앙유산을 소중하게 되살리는 명절이기를 바랍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