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 갔을 때 우리 부부는 나이 많은 부부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결혼한 지 40년이 된 부부였지만，남편은 아직도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은숙아~’ 남편은 의대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아내는 가난한 살림에 돈을 벌려고 간호사로 미국으로 왔습니다. 아내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젊은 의사에게 마음이끌렸고 두 분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후에도 늘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이름을 들으며 아내는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진한 행복감과 안정감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진한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다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의 이름을 잘 불러줍니다. “예진씨 보고 싶었습니다" “수정씨 사랑합니다" “재한씨，우리 함께 영화 보러 갈까요?” “재학씨，우리 차 한 잔하고 갈까요?“ 그러나 조금씩 친해지면 서는 어느 덧 이름은 사라지고 ‘자기’ ‘오빠’ 라는 호칭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초에도 이런 호칭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여보’ ‘당신’ 이라는 호칭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조금 크면 이제는 ‘재한 아빠’ ‘재한 엄마’로 통하기 시작합니다.

이름을 상실해 가는 것입니다. 아예 부부 사이에는 이름을 사용 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이름을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 다. 거의 이름을 잊고 살게 됩니다. 이름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아버지학교를 할 때 재소자들에게 이름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 이름표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면서 쓰다듬는 모습을 보았습 니다. 번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꽂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고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잃어버렸던 젊은 날의 열정이 살아날 것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을 것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면 아내는 꽃이 되어 내게로 다가올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것입니다 다정한 눈빛으로 아내를 보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끔 아내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 김성묵 (사단법인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국제운동본부장, 온누리교회 장로)

/ '건강과 생명' 2010년 12월호 중